공천 논란 내세웠지만…윤 대통령 ‘역린’ 건드린 대가라는 시각 지배적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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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최측근인 한 비대위원장에 사퇴 요구 배경 두고 논란 분분
김경률 관련 ‘사천’ 논란 언급했지만 명품가방 의혹 시각차가 촉발한 듯
친윤, 한동훈 ‘자기 정치’ 시그널로 본 듯…일각선 공천 시스템 뒤집기 시각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두 달여를 앞두고, 게다가 취임 한 달도 안 된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라는 초강수를 선택한 배경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대통령실은 표면적으로 한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공개 지지하면서 불거진 ‘사천’ 논란을 언급했지만, 윤 대통령의 ‘역린’과 같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입장 차가 근본 원인이라는 게 여권 내 지배적인 시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요구설이 불거진 지난 21일 일부 언론에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이른바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천 논란을 이유로 한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는 부분은 인정하는 뉘앙스였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해당 지역 기존 출마자들이 반발하는 등 ‘시스템 공천’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심사가 이제 시작되는 단계이고, 김 비대위원의 공천이 실제 이뤄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신뢰 철회’를 언급하며 한 위원장의 사퇴까지 나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분노’는 결국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미묘한 입장 변화가 촉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논란 초기에는 ‘몰카 공작’이라며 김 여사 측 입장을 적극 두둔했으나, 김 비대위원과 일부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최근에는 “국민 입장에서 걱정할 부분이 있었다”며 해법을 고민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를 두고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편해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낸 친윤(친윤석열) 핵심인 이용 의원은 전날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 철회 관련 기사와 함께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 없다는 한 보수 유튜버의 주장 요지가 담긴 글을 의원 단체대화방에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던 신평 변호사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위원장이 여권 강성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했다. 급기야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완전히 젖어있다”고 주장하면서 비대위원장직 사퇴가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당내에서도 “윤 대통령이 준 비대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자신이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라는 일부 친윤계 의원들의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대권용으로 해석하는 친윤 내부의 내재된 불만이 엿보인다.

이와 관련, 한 위원장이 취임 이후 지방에 갈 때마다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고, 총선 출마자들도 윤 대통령 대신 ‘한동훈 마케팅’에 나서면서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위상을 굳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 권력의 무게 중심이 한 위원장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한 위원장이 ‘관리형’을 넘어 윤 대통령 뜻에 반하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 대한 윤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만이 명품 가방 이슈를 계기로 폭발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취임 일성부터 ‘주류 희생’을 강조해온 한 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할 경우 낙천 가능성이 우려되는 친윤계의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위원장의 공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친윤 일각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뒤집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총선 승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소위 ‘약속 대련’으로 보지만, 이번 일로 어느 한 쪽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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