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논란 내세웠지만…윤 대통령 ‘역린’ 건드린 대가라는 시각 지배적
윤 대통령, 최측근인 한 비대위원장에 사퇴 요구 배경 두고 논란 분분
김경률 관련 ‘사천’ 논란 언급했지만 명품가방 의혹 시각차가 촉발한 듯
친윤, 한동훈 ‘자기 정치’ 시그널로 본 듯…일각선 공천 시스템 뒤집기 시각도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두 달여를 앞두고, 게다가 취임 한 달도 안 된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라는 초강수를 선택한 배경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대통령실은 표면적으로 한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공개 지지하면서 불거진 ‘사천’ 논란을 언급했지만, 윤 대통령의 ‘역린’과 같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입장 차가 근본 원인이라는 게 여권 내 지배적인 시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요구설이 불거진 지난 21일 일부 언론에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이른바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천 논란을 이유로 한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는 부분은 인정하는 뉘앙스였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해당 지역 기존 출마자들이 반발하는 등 ‘시스템 공천’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심사가 이제 시작되는 단계이고, 김 비대위원의 공천이 실제 이뤄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신뢰 철회’를 언급하며 한 위원장의 사퇴까지 나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분노’는 결국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미묘한 입장 변화가 촉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논란 초기에는 ‘몰카 공작’이라며 김 여사 측 입장을 적극 두둔했으나, 김 비대위원과 일부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최근에는 “국민 입장에서 걱정할 부분이 있었다”며 해법을 고민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를 두고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편해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낸 친윤(친윤석열) 핵심인 이용 의원은 전날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 철회 관련 기사와 함께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 없다는 한 보수 유튜버의 주장 요지가 담긴 글을 의원 단체대화방에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던 신평 변호사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위원장이 여권 강성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했다. 급기야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완전히 젖어있다”고 주장하면서 비대위원장직 사퇴가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당내에서도 “윤 대통령이 준 비대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자신이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라는 일부 친윤계 의원들의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대권용으로 해석하는 친윤 내부의 내재된 불만이 엿보인다.
이와 관련, 한 위원장이 취임 이후 지방에 갈 때마다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고, 총선 출마자들도 윤 대통령 대신 ‘한동훈 마케팅’에 나서면서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위상을 굳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 권력의 무게 중심이 한 위원장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한 위원장이 ‘관리형’을 넘어 윤 대통령 뜻에 반하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 대한 윤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만이 명품 가방 이슈를 계기로 폭발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여권 일각에서는 취임 일성부터 ‘주류 희생’을 강조해온 한 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할 경우 낙천 가능성이 우려되는 친윤계의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위원장의 공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친윤 일각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뒤집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총선 승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소위 ‘약속 대련’으로 보지만, 이번 일로 어느 한 쪽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