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인간을 다시 보게 만드는 일
나의 미국 인문 기행 / 서경식
2023년 12월 18일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이 마침내 끝났다. 미국 인문 기행을 마치고 독일과 불란서로 갈 작정이었다고 한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 이후 30년을 맞아 기획된 것이었다. 재일조선인 2세 작가였던 그의 인문 기행 종착지는 그렇게 미국이 되고 말았다. 서양 미술 순례의 시작은 뜻밖에도 1970년대 군사정권이 조작한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두 형의 석방을 요구하는 구명 운동이었다. 그 와중에도 미술관을?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좋은 미술 작품과 조우하기를 바라며 떠돌아다니는 일이 생존에 필요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미국이란 어떤 존재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명백한 차별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는 나라, 정녕 이것이 아메리카인가라고 회의한다. 아메리카를 좋아하며, 동시에 무척 싫어한다. 그는 이런 극단적 모순과 항쟁이야말로 아메리카라고 결론 내린다. 우크라이나도 미얀마도 어느새 진부한 일이 되고 만 사실이 우려스럽다.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늘 전쟁이고, 인간은 타인에게 늑대라니….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미국 인문 기행을 어렵게 이어가다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그런 상황 속에서 쓴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스스로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라면, 이 시절을 쓰고 그리는 일은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정신적 행위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단순한 미국 인문 기행이 아니라 어쩌면 일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가 마주한 암울한 현재에 대한 사유가 반짝반짝 빛난다. 서경식 지음/최재혁 옮김/반비/264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