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야기가 있는 공간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문학관·전시관·역사 건축물
도시 여행 매력 좌우할 공간
부산근현대역사관 전면 개관
원도심 새로운 발전 축 기대

많은 이들이 도시를 여행한다. 관광 계획을 세워 다른 도시를 찾아가기도 하고, 일상에서 자기가 사는 도시를 돌아보기도 한다. 도시 여행에서는 다양한 공간이 방문 포인트가 된다. 그 공간이 유명 맛집일 때도 있고, SNS ‘핫플’ 카페일 때도 있다. 대형 상업·레저시설부터 전통시장, 역사적 장소까지 다양하다. 미술관·박물관·책방 같은 문화공간도 인기 방문지 중 하나이다. 방문 이후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어떤 공간은 재방문 리스트에 올려 둘 정도로 흥미롭고, 어떤 공간은 ‘이대로 괜찮을까’ 걱정될 정도로 재미가 없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동행자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공간에서 매력을 느끼는 어떤 기준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두 달 전 도시 A의 문학관을 찾았다. 문학계 숙원 사업이던 부산문학관 건립 부지 확정 소식을 접한 터라 좋은 예시를 볼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다. 원도심에 위치한 건물 외관은 그럴듯했으나 내부는 썰렁했다. 지역 작가 관련 출판물 등을 그냥 모아둔 수준이었다. 나름 신경 쓴 것 같은 설치물마저 맥락 없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지역 문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자리에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갖고 시작한 공간일 텐데 왜 이럴까 싶었다. 문학관이란 시민과 함께 지역 문학을 호흡하는 장소여야 하는 것 아닐까. 부산문학관은 여기와는다른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도시 B의 근대건축물을 방문했다. 방송에도 소개될 정도로 독특한 공간이었지만 분위기가 휑했다. 해당 건축물의 역사와 의미가 적힌 안내판만 놓여 있었다. 건물 내부에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앉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조금만 제대로 가꾸면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장소가 될 것인데 이게 뭔가 싶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축물을 지역과 이어주는 역할도 공간 운영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도시 C의 공립미술관에 갔다. 미술 작가가 거주했던 집을 자치구가 매입해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50년 전에 지었다는 주택의 남다른 내부 구조에 감탄했다. 때마침 공간을 재해석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열려 건물이 가진 매력을 더했다. 2층 자료실에는 건물 신축공사 때, 작가가 구입한 이후 보수공사 때,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때의 설계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집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아카이브 서가와 작가의 개인사를 보여주는 전시물까지 어우러졌다. 공간, 작가,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도시 D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학 체험 전시공간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소설을 재현한 곳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그들의 어록을 소개하고 주인공의 작은 셋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꽤 흥미로웠다. 작가가 기증한 부모님 사진, 직접 그린 그림과 소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책장에 꽂힌 책들에 눈이 갔다. 작가가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해당 작가의 다른 소설까지 찾아 읽고 싶게 만드는 작지만 알찬 공간이었다. 시간이 박제된 공간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4개의 사례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이 지난달 5일 전면 개관했다. 2023년 3월 별관, 12월 본관 지하 금고미술관 오픈에 이어 ‘완전체’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시민과 만나고 있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리모델링한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지하의 금고미술관이다. 동전주화, 금괴, 손상된 화폐 등을 보관했던 4개의 금고실과 감시복도로 이뤄진 금고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이중삼중 철창으로 보안 조치한 환기구, 두꺼운 철문과 잠금장치를 엿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특히 1층의 철문 뒤에 쓰인 작은 숫자는 금고 문을 여는 비밀번호가 아니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평일 낮에 찾아간 부산근현대역사관에 사람이 많아 놀랐다. 개항부터 현대도시 부산까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2개 층의 상설 전시실과 부산 야구를 다루는 특별 전시실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금고미술관 개관 이후 지금까지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 누적 방문객 숫자가 3만 명을 넘었다. 역사관 관계자는 개관에 방학까지 겹치며 주말에는 약 3000명이 부산근현대역사관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덩달아 별관 방문객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니 시작이 좋아 보인다. 앞으로 이곳이 더 생생하게 지역의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원도심의 새로운 발전 축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오금아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