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에프킬라, 폭발물로 오인… 비행 1시간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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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드리드 공항 해프닝
트롤선 인수하러 15명 라스팔마스 행
가방 안에 폭발물 들었다며 공항 ‘발칵’
확인하니 바퀴벌레용 살충 스프레이 2통
비행기 이륙 못해 승객들 눈총 쏟아져

공항 검색대에서 적발돼 압수된 휴대 금지 물품들. 연합뉴스 공항 검색대에서 적발돼 압수된 휴대 금지 물품들. 연합뉴스

그때 우리 일행은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어장에 출어할 트롤선 다니카호를 인수하러 가는 길이었다. 다니카호는 라스팔마스 아스티칸 조선소에 입거해 있었다. 우리 제2진이 탑승할 비행기는 17시 40분 김포발 파리행 에어프랑스 271편이었다. 기종은 보잉 747이었다. 제2진은 15명으로 기관장인 내가 인솔자였다. 일행이 많고 짐도 많아 일찌감치 탑승 수속을 마쳤다. 이제 고국 땅을 떠나면 2년 후에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선원들은 너도나도 가족 친지들에게 전화를 하느라고 바빴다. 2월 하순인데도 김포공항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바람은 바늘로 귓불을 찌르는 듯 맵차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파리행 에어프랑스 271편은 정시에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약 1시간 동안 지체하며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연료와 식품을 보급받고 새 승객을 태웠다. 다음 경유지는 앵커리지였다. 비행기는 21시에 나리타공항을 박차고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나리타에서 탑승한 승객으로 이제 기내는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도쿄에서 앵커리지까지 비행시간은 6시간 25분. 비행기는 고도 1300~1800m, 시속 500~900㎞로 북극 상공을 가로지르며 날았다. 기내 화면은 계속해서 비행 중인 항로와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식사가 나왔다. 후추 친 연어, 계란 버섯 곁들인 감자 퓨레와 버터로 조리한 브로콜리, 샐러드, 치즈, 초콜릿 케이크, 바케트 빵, 그리고 컬럼비아 커피. 난생처음 먹어보는 프랑스 음식이라고 선원들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비상 상황 때는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 요원들이 일일이 가방을 뒤지기도 한다. 연합뉴스 비상 상황 때는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 요원들이 일일이 가방을 뒤지기도 한다. 연합뉴스

비행기는 새벽 4시에 앵커리지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은 아침 10시. 여기서 한국인 스튜어디스는 모두 외국인으로 교체되었다. 머나먼 바다로 장기 조업 나가는 선원들이 맘에 걸렸는지 포도주도 아낌없이 따라주고 집 떠나면 맛보기 어려울 거라고 밤톨만한 고추장도 나눠주었는데, 떠날 때는 연민의 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하고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한국 스튜어디스가 떠나자 기내 우리말 방송도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경찰이 동승하여 호송하는 버스를 타고 오를리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자 비행기 표와 선원수첩을 공항 관리가 보관하고 대합실에서 3시간 동안 꼼짝도 못하게 했다. 목은 마르고 배는 고팠지만 공항 내에서는 물 한 모금 사 먹을 수가 없었다. 비상금으로 달러는 조금씩 가지고 있었지만 매점에서는 달러를 받지도 않고 환전소도 없었다. 프랑스는 수질이 나빠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하는 줄 알면서도 목마른 선원들은 화장실에서 목을 축이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탑승 시간이 되어 마드리드행 에어프랑스 보잉 707기에 올랐다. 마드리드로 가는 동안 모두 배가 고파 기내식을 깨끗이 비웠다. 오를리 공항에서 당한 분풀이라도 하듯 볼이 쪼글쪼글한 할머니 스튜어디스에게 음료수를 거듭 요청했다. 할머니 스튜어디스는 사정을 알 만하다는 듯 눈웃음 지으며 꼬박꼬박 시중을 들어주었다.

마드리드에서 라스팔마스까지는 국내선이라 탑승할 비행기는 스페인의 이베리아 항공사 소속이었다. 그래서 국제선 청사에서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야 했다. 배기지 클레임에서 무거운 고생보따리를 찾아 마드리드 공항의 명물인 장거리 벨트 컨베이어(Esca-lade)를 타고 국내선 청사로 이동했다. 거기서 다시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공항 내 식당에서 닭다리와 감자튀김 그리고 코카콜라로 저녁 식사를 때웠다.

라스팔마스행 국적선 비행기가 있는 마드리드 공항의 한 모습. 연합뉴스 라스팔마스행 국적선 비행기가 있는 마드리드 공항의 한 모습. 연합뉴스
필자가 라스팔마스로 가기 위해 경유한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공항 모습. 부산일보 DB 필자가 라스팔마스로 가기 위해 경유한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공항 모습. 부산일보 DB

수화물 탁송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대합실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긴 듯 무장한 검색요원이 헐레벌떡 우리 일행에게 달려왔다. “여기 인솔자가 누구냐!” “내가 인솔자다. 무슨 일이냐?” 내가 나서자 검색요원은 두말하지 않고 따라가자고 손짓만 했다. 내가 따라간 곳은 수화물 검색요원 사무실이었다. 그곳의 책임자라는 여자 검색요원이 따로 골라놓은 허름한 가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가방 주인이 누구냐?” 꼬리표를 보니 서울에서 온 우리 일행의 가방이 틀림없었다. 기관원 김삼룡이 주인이었다. “왜 그러느냐?” “이 가방 속에 폭발물이 들었다.” 폭발물(Explosive)이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급히 김삼룡을 불렀다. 삼룡이 나타나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녀석은 무슨 특공대원처럼 개구리 무늬 야전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예사로 보았는데 사건이 생기니 그것도 눈에 거슬렸다. “야, 삼룡아, 도대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니 가방 속에 폭발물이 들었다고 공항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자 삼룡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프킬라, 강구 약 에프킬라가 두 통 들었심더.” 그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에, 장거리 국제선 비행기를 타면서 에프킬라를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단 말인가? 김포공항과 에어프랑스 검색대에서는 왜 발각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단체 선원들 짐이라고 해서 일일이 체크하지 않고 그냥 통과시킨 모양이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는 항공사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검색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었던 것이다. 나는 검색요원에게 내용물을 설명하고 가방을 열어보자고 했다. 여자 책임자는 안 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무전 교신을 했다. 상부의 허락을 받았는지 잠시 후에 열어도 좋다고 했다.

필자 일행이 마드리드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에 걸려 비행기를 1시간 지연시키게 한 문제의 에프킬라. 연합뉴스 필자 일행이 마드리드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에 걸려 비행기를 1시간 지연시키게 한 문제의 에프킬라. 연합뉴스
한 국제공항에서 공항 직원이 휴대 금지 물품을 승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 국제공항에서 공항 직원이 휴대 금지 물품을 승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에프킬라 한 통을 꺼내 그림을 보여주며 한번 쏘아볼까 했더니 못하게 했다. 책임자는 의심이 풀렸는지 다시 뭐라고 교신을 했다. 아마 살충제라고 상부에 보고한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시간은 꽤 흘렀다. 여자 책임자가 말했다. “폭발물은 아니지만 액체 가스도 위험물이라 압수한다. 그리고 가방 주인은 단체 승객이 분명하니 탑승해도 좋다.”

여자 책임자는 우리 때문에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고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으니 빨리 탑승하라고 손짓했다. 나는 서투른 스페인어로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매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삼룡이와 나는 무슨 VIP라도 되는 것처럼 검색요원이 모는 지프를 타고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정말 그만하기 천만다행이었다. 관리들이 부패한 후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무슨 곤욕을 치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은 라스팔마스에 한국 수산회사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어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었던 것이다.

삼룡이와 내가 비행기에 들어서자 모든 승객들의 눈총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눈총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에프킬라 때문에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나중에 삼룡이는 에프킬라 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데구리 배 타는 내 친구가 배에 가모 강구가 잠잘 때 발가락을 물어뜯는다 캐서, 에프킬라는 꼭 갖고 가야 된다 캐서…….” 글/김종찬 해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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