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감독 신작 맞나…무리수만 넘치는 ‘아가일’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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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는 개봉 직후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감각적인 연출과 화려한 영상미, 명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뤄 국내에서도 호평일색이었습니다. 주연 배우 콜린 퍼스의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한동안 유행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지난 7일 개봉한 ‘아가일’은 바로 이 ‘킹스맨’을 연출한 매슈 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북미 시장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출발하며 역대급 ‘폭망’이 예상되는 상태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직접 보고 왔습니다.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기자는 ‘때깔’ 좋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킹스맨’은 사실 취향에 안 맞는 부분이 있었지만 때깔 하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아가일’ 역시 예고편을 봤을 때는 때깔이 좋아 보입니다. 화려한 영상미를 기반으로 헨리 카빌과 존 시나가 호흡을 맞추는 웰메이드 스파이물로서 최소한 오락성 하나는 잡았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런 기대는 첫 오프닝에서는 충족됩니다. 헨리 카빌이 두아 리파를 상대로 벌이는 액션신은 컴퓨터그래픽(CG) 티가 상당히 나기는 하지만, 꽤나 박진감 넘치고 화려합니다. 배우로 변한 가수 두아 리파의 뇌쇄적인 빌런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이후 펼쳐지는 설정도 흥미진진합니다. 오프닝 장면은 사실 스파이 소설 ‘아가일’ 시리즈의 한 장면입니다. ‘아가일’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작가인 엘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는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엘리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탄 기차에서 난동이 벌어집니다. 맞은 편에 앉은 남자 승객 에이든(샘 록웰)이 엘리를 해치려고 달려드는 괴한들을 제압하고, 자신이 진짜 스파이라고 밝힙니다.

상상 속 스파이와는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에이든. 그는 엘리가 소설에 쓴 내용이 스파이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황당한 설명을 쏟아냅니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로 킬러들이 난데없이 덤벼드는 상황에서 의지할 사람은 에이든뿐입니다. 이제 엘리와 에이든은 스파이 조직의 치부를 폭로할 소설 속 ‘마스터 파일’을 실제 세상에서 찾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영화는 이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안기려 합니다. 문제는 그 반전이 그리 신선하거나 충격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반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극 중 반전들은 기시감이 들고 개연성도 떨어집니다. 반전이 필요 이상으로 남발되고, 그 중 몇몇은 ‘무리수’에 가까워 보입니다.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TPO 안 맞는 액션, 코드 안 맞으면 지루

액션 역시 마찬가지. ‘킹스맨 감독’에게서 기대한 화려하면서 개성 넘치는 액션 장면이 있기는 한데, 다소 뜬금없습니다. 형형색색의 색감이 돋보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사실 ‘킹스맨’에서 관객을 사로잡은 액션 역시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가일’에서의 액션,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 액션은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극 흐름에 잘 맞지 않아 어색하고, ‘유쾌하려 애쓰는 B급’ 느낌이 과합니다. 영화 종반부에도 액션신이 몰아치지만 별 차이는 없습니다. 액션에 슬로우를 걸고 경쾌한 음악을 트는 진부한 연출이 반복됩니다.

캐릭터 활용에서도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고편과 달리 헨리 카빌, 존 시나, 두아 리파는 영화 핵심 캐릭터가 아닙니다. 특히 존 시나와 두아 리파는 사실상 오프닝에서만 소모됩니다. 그나마 헨리 카빌은 종종 등장하는데,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정 탓에 역할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이런 설정을 예고편에서 암시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비중이 낮을 줄은 몰랐습니다. 중고차 ‘허위 매물’에 속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요.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아가일’.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매력 없는 캐릭터와 밋밋한 스토리…흥행 실패는 뻔한 결말

그렇다고 주연 배우들의 ‘케미’가 좋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체형이 된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와 평범남 그 자체인 샘 록웰은 현실적이고 친근하긴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수트를 쫙 빼입은 ‘킹스맨’ 속 콜린 퍼스 수준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빌런 캐릭터 역시 무능력해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오죽하면 웬만한 영화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새뮤얼 L. 잭슨마저 작위적이고 뻔한 캐릭터로 전락했습니다. 배우 연기가 아니라 연출과 디렉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3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도 반전이 연속되니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명을 쏟아내는데, 반전도 설명도 흥미롭지 않아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아가일’은 애플 오리지널 필름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제작비는 2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보다 한 주 먼저 개봉한 북미 시장 오프닝 성적이 ‘폭망’에 가깝습니다. 개봉작이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3600여 개 극장에서 1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습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 개봉한 ‘웡카’가 개봉 첫 주 3900만 달러를 기록했고, 매슈 본 감독 전작인 ‘킹스맨 2’도 3900만 달러였습니다. 해외 관객과 외신 모두 혹평을 내놔 흥행에 실패할 공산이 큽니다.

한국 시장에서의 평가도 좋지 않습니다. CGV 실관람객 만족도를 나타내는 ‘골든에그’ 지수는 개봉 이튿날인 8일 현재 81%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아가일’ 액션신에 삽입된 노래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쿠키 영상이 하나 나옵니다. 세계관 확장을 시사하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차기작을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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