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상전 아닌 성실한 머슴을 뽑자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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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21대 국회 극심한 여야 정쟁에 몰두
당 이익 앞세워 경제난·민생고 외면

본분 잊은 채 무위도식한 선량 많아
임기 초 ‘국회의원 선서’ 초심 무색

국민 이익·지역발전 힘쓸 일꾼 필요
자질·능력 본위의 4·10 총선 돼야

봄기운을 타고 선거철이 찾아왔다. 22대 총선을 50여 일 앞두고 여야의 표심 잡기와 예비후보들 간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이와 달리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 대부분의 시선은 싸늘하다. 저성장과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 가슴속에 정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해서다. 설 연휴 기간 전국 표밭 갈이에 나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민심을 확연히 느꼈을 게 분명하다. 이는 양당이 연휴가 끝나자 앞다퉈 민생을 강조한 논평을 내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당에 희망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싶다. 민생이 어렵고 국민 불만이 커진 데 대해 뼈저린 반성보다는 상대당 탓만 해대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로 당당한 태도로 “정권 심판”과 “거대 야당 타도”를 외친다. 거대 양당이 지난 4년간 경제 위기와 민생고를 외면한 채 당리당략을 최우선한 정쟁의 늪에 빠진 모습은 여전하다. 총선 과정에서는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더욱 극심하게 대립할지 모른다.

21대 국회를 돌이켜보면 최악 수준이라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믿고 자기 당에 유리한 입법 독주를 일삼은 데다 이재명 대표 방탄에 혈안이 됐다. 국민의힘은 야권을 설득해 협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능한 여당’ ‘마피아 같은 제1야당’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되레 이념의 양극화와 국론 분열을 조장했다. 결국 국정은 정치 실종에 발목이 잡혀 차질을 빚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정치 불신과 혐오가 증폭하고 일각에서 국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개개인도 자질적인 문제가 많다. 현역 의원은 임기 초 국회에서 국민 앞에 선서를 한다. 헌법을 준수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단 다짐이다. 그런데 이 선서에 충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소속당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고 당론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민 이익을 좇아 열심히 일하는 소신 정치인이 매우 드문 게 엄연한 현실이다.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 법안이 숱해 법안 가결률이 역대 최저인 5.6%에 불과하고 전체 의원의 공약 이행률이 51.8%에 그친 원인이 여기에 있다. 부산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은 더 낮은 45.2%라 개탄스럽다.

4·10 총선에서 선출될 22대 선량들이 정쟁에 매몰돼 본연의 임무에 소홀한 21대 행태를 답습하는 건 정말 곤란하다. 무위도식하며 불체포·면책 특권 등 180여 가지 혜택은 찾아서 누리는 상당수 국회의원이 어김없이 챙겨가는 거액의 세비가 너무나 아깝다. 비위나 범죄에 연루돼 피고인 신분으로 수사·재판을 받는 의원도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든 지역구에서든 귀빈 예우를 요구하거나 받으며 상전 노릇하기가 다반사다. 이들에게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유효한 것은 선거철뿐일 테다. 한 표가 아쉬워 머슴을 자처하며 허리를 과할 정도로 굽히고 사탕발림 공약을 남발하다 정작 국회에 입성하면 태도를 바꿔 목에 힘주고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다.

이같이 몰염치하고 반개혁적인 인사는 거대 양당의 총선 예비후보 가운데 많이 보인다. 양당 내 계파 갈등으로 이합집산하는 신당 추진 세력에서도 눈에 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이다. 각 당 전략 공천자 중엔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연고 없이 지명도와 스펙만 앞세운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이 냉철하지 못하면 국민보다 정당 이익을, 공익보다 사익을 챙길 우려가 있고 득표 기술도 능란한 출마자에게 속아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랬다간 볼썽사납고 국력을 낭비한 21대 국회 꼴이 나기 십상이다.

지금은 과도한 집중으로 폐해가 심각한 수도권과 인구 급감과 경제 쇠퇴로 소멸 위기에 처한 비수도권의 공멸을 막기 위한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하다. 다 함께 잘 사는 지방시대를 실효적으로 열 만한 참일꾼이 대거 필요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은 정당과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인물이 돼야 한다. 제대로 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지역발전에 매진할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과 서울 대신 지역을 쳐다보고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면서 민의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이를 선택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역량 있는 소수정당 출신도 국회 진출이 가능해 거대 양당 체제의 정치 양극화 폐단을 줄일 수 있다. 이번 총선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 개혁을 이룰 기회다. 성실한 공복 발굴을 위해 현명하고 꼼꼼한 주권 행사가 요구된다. 안 그러면 당선자를 받드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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