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우린 고통을 잊고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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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현의 ‘일상인’

박자현의 ‘일상인’.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박자현의 ‘일상인’.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박자현은 고통을 즐기는 작가인지 모르겠다. 이 표현은 오해를 살만한 것이지만, 고통 없이 창작이라는 행위는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그의 작업방식은 커다란 흰 종이 위에 펜으로 작은 점을 찍어 인물을 사실에 가깝게 그린다. ‘일상인’은 초점 잃은 눈을 가진 여성이다. 완성하는데 꼬박 한 달 이상은 걸릴 듯하다. 어쩌면 고통으로 번민을 제거하려는 의도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왜 이렇게 힘든 방법을 택했을까.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은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간다. 일상에서 아주 잠깐씩 떠올리기는 하지만, 일에, 놀이에, 크고 작은 관심사에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하루를 보낸다. 이틀, 사흘, 일주일, 일 년 어느덧 십 년,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그만큼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박자현은 육체의 고통을 하얀 종이 위에 옮기고 있는지 모른다.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번민을 그리는 것이리라.

‘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점묘파이자 신인상파인 조르쥬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는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308×207cm)라는 대작을 점으로만 그렸다. 그런데 그가 점으로 그린 이유는 과학적이다. 인상파처럼 말이다.

물감은 색을 더할수록 명도(밝고 어둠을 나타내는 수)가 낮아진다. 이것을 감산혼합이라고 한다. 빛은 색을 더할수록 명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태양 빛은 모든 색이 더해져 흰빛(물감의 흰색이 아니다.)이 되는 것이다. 인상파는 공기 속에 있는 빛의 색을 화면에 옮겨내려는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가산혼합 혹은 병치혼합을 사용했다. 즉 명도가 높아지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쇠라는 더 나아가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물감으로 점을 찍는 것으로 더욱 빛과 같은 효과를 내고자 했다. 이것이 점묘법이다.

박자현이 이런 점묘법을 모방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현대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고통과 죽음으로 다가가는 숙명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 듯하다. 아니, 자신이 가진 고통과 번민을 잊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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