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행복해지기 위해 운다
박진성 작가 아저씨 조각
양세형 시집 실려 화제
현대인 눌린 감정 표출
많은 이들 공감 얻어
개그맨 양세형의 시집이 시집으로는 드물게 7쇄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화제가 되고 있다. 궁금한 맘에 나 역시 시집을 구입했는데,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건 정작 시가 아니라 페이지 곳곳에 실린 박진성 작가의 조각 작품들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시집의 리뷰를 보니 ‘시보다 조각이 더 마음에 들어요’ ‘시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조각에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같은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 작가는 20여 년째 줄곧 부산에서 작업을 이어온 지역의 작가이다. 지역에서 작업을 하지만 사실 박 작가는 전국구를 넘어 외국 아트페어에서도 꾸준히 작품이 판매되는 인기 작가이다. 경성대 앞 박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화제가 되는 시집 이야기부터 6월 열릴 개인전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출판사 대표님이 오래전부터 제 작품의 팬이셨어요. 5년 전 먼저 연락이 와서 자신은 책을 만드는 사람인데 저의 아저씨 조각들이 너무 좋다며 언젠가 꼭 책에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죠. 몇 년 전 굉장히 유명한 책에 들어가려고 기획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그 책은 이미지 없이 글만 넣는 걸로 결정되었죠. 그러다 이번 양세형 씨 시집을 만드는데 대표님이 양세형 씨에게 제 조각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양세형 씨가 보자마자 너무 좋다고, 꼭 이 작품을 사용하자고 했다더군요.”
박 작가는 일요일 하루만 빼고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작업실을 지키는 작업광으로 유명하다. 엄청난 작업량 덕분에 그동안 거의 매년 부산과 서울, 대구에서 전시를 열었고, 당연히 시집에 들어갈 작품은 차고 넘쳤다. 너무 좋은 작품들이 많아 정작 어떤 걸 넣어야 할지 출판 기획자는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책 작업이 진행됐고 출간 후 양세형의 시집인데 박 작가에게도 “너무 잘 봤다” “작품 좋아요”라는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물론 저자가 아니기 때문에 박 작가는 판매량에 따른 비용 정산은 없단다.
박 작가의 대표작인 아저씨 조각은 특유의 표정이 있다. 아기 얼굴에 주름과 수염이 살짝 보인다. 눈에는 언제나 촉촉 눈물을 머금고 있다. 가끔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아저씨 조각으로 불리지만 사전적 의미인 중년남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도, 남편일 수도, 아니면 자신일 수도 있는 ‘익명의 어른’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눈물은 가식적이지 않고 꾸밈없는 내면을 드러내는 의미입니다. 어른에게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으로 치부되며, 참아야 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집니다. 이렇게 참아온 눈물은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어른이 된 이를 괴롭게 하죠. 눈물 흘리는 인물상을 통해 가슴속에 쌓아왔던 억눌린 감정들을 표현하고, 다양한 표정과 상황묘사를 통해 행복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박 작가는 우는 얼굴을 대신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냐는 말도 듣는다고 한다. 작가는 슬플 때도 울지만, 기쁠 때도 운다고 대답한다. 사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는 것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박 작가의 조각이 우는 건 행복해지는 과정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우는 행위는 박 작가 개인의 경험과도 연결돼 있다. 엄격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아들이 평생 예술가로 산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전업 작가의 길로 가려는 아들의 선택을 두고 반대가 심했다. 내성적인 박 작가는 취업을 권유하는 아버지를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한참을 방황하다가 결국 아버지 앞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성인이 된 후 부모님 앞에서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속이 펑 뚫리는 기분이었단다. 그 느낌은 아저씨 조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 작가의 아저씨 조각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거나 맞닿아있는 거울 시리즈,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라는 의미을 담은 아저씨와 책 시리즈,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하라는 의미의 풍선 시리즈 등이 있다. 이번 6월 부산 맥화랑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또 다른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작업실에서 미리 새로운 시리즈를 살짝 볼 수 있었지만, 6월 전시를 위해 언급하지 않기로 박 작가와 약속했다. 살짝만 공개하자면, 좀 더 다양한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