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복지법’ 시행됐지만… 5년 유예 빈틈 노린 동물 카페들
지난해 12월 동물원법 등 시행
서식 환경 등 설립 조건 강화돼
라쿤 같은 야생동물 전시 금지
시행령 개정 전 4곳 업종 변경
고양이·개는 규제 적용 안 돼
지난 8일 오후 4시께 부산 수영구 민락동 A실내동물원. 이곳은 돼지와 앵무새, 토끼, 오리, 도마뱀 등 총 26종 96개체가 모여 있는 실내동물원이다. 도심에서 다양한 동물을 쉽게 접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도 곧잘 보였다.
좁은 실내에 동물과 사람이 뒤섞여 있어 현장은 부산스러웠다. 어린아이 한 명이 돼지에 올라타려 하니 돼지가 놀란 듯 도망쳤다. 쓰다듬기 체험을 위해 직원 손에 들려진 돼지는 ‘꿰엑’ 비명을 질렀다.
한쪽 휴식 공간에는 새끼를 낳은 어미 돼지가 누워 있었다. 성인 남성의 허리 높이로 된 유리 벽으로 전시 공간과 휴식 공간이 나뉘어 있는데 이들 공간은 방문객 시선에 노출된 상태였다. 태어난 지 2주가 된 새끼 돼지는 어미 곁이 아닌 전시 공간에 나와 방문객 손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도망쳤다. 인간 중심의 공간에서 동물들이 하나의 콘텐츠처럼 다뤄지고 있었다.
동물 복지를 강화하는 법이 시행됐지만 유예 기간이 존재하는 탓에 동물들은 여전히 열악한 시설에서 생을 보내고 있다.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 동물도 있어 법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4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 시행령’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동물원법 시행령 핵심은 동물원과 수족관 설립 절차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적합한 서식 환경, 수의사 확보 등 동물원 설립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야생생물법은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라쿤, 미어캣 등 야생동물을 전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명시했다. 동물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취지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동물을 전시해 영업하는 곳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기존에 동물원으로 등록된 업체에 대해서는 시행일로부터 5년의 유예 기간을 줬다. 해당 업체들은 2028년 12월까지 법적으로 요구되는 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예 기간을 노려 법이 강화되기 전 동물원으로 업종을 변경한 업체는 부산에서 모두 4곳이었다.
야생동물법 시행령 개정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이번 개정안은 라쿤, 미어캣 등 야생동물 일부를 동물 카페 같은 동물전시업 업체에 전시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동물보호법 등 별개 법으로 규정된 고양이, 개 등의 경우에는 여전히 동물 카페 운영이 가능하다.
동물 단체는 법 허점이 동물 복지를 향상하자는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동물을 전시·관람용으로 사용하는 동물원, 동물 카페 같은 장소가 지금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정부도 나름의 판단을 두고 유예 기간을 정했겠지만, 어떤 동물은 생애 주기가 5년 미만으로 평생을 열악한 시설에서 지낼 수도 있다”며 “고양이 등 다른 동물 카페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업체 측은 동물원과 동물 카페의 순기능이 존재한다며 반박한다. 동물 복지를 보장하자는 취지는 동감하나 개정안이 동물단체 측 의견을 과도하게 반영했다고 지적한다.
A업체 대표는 “개개인이 키우기 힘든 동물들을 전문적인 인력과 시설이 맡으면 동물 유기 같은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며 “실내동물원과 동물 카페 등은 아이 교육 목적으로도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