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3·15 의거 64주년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945년 11월, 우파 성향의 단체 신구회가 해방 후 첫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조선을 이끌 양심적 지도자는?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김일성 9%, 김규식 5%. 그 뒤 미군정의 존 하지 사령관이 미국 정부에 보낸 극비 보고서도 유사한 내용이다. ‘지금 당장 대통령 선거를 하면 1등은 여운형, 2등은 김구, 이승만은 3등.’ 그런데 여운형과 김구는 해방공간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지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다.

이승만은 일제강점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사람이다. 항일 무력투쟁보다는 국제 청원외교를 선호했다. 미국 군부 내 반공 세력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 그는 맥아더의 도움 아래 조기 귀국한 뒤 해방정국에서 주도권을 잡는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이후 12년간 휘두른 절대권력은 무수한 악업을 낳았다. 반민특위 해산과 친일세력 옹립, 국민보도연맹을 통한 민간인 학살, 수십만 명의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국민방위군 예산 횡령…. 이승만 정권의 한계는 1960년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점으로 치달았다.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려는 미증유의 부정선거는 당장 그날,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만다. 그게 바로 경남 마산에서 터진 3·15 의거다.

3·15 의거 64주년이다. 3·15 의거를 한 달여 뒤에 일어난 제2차 마산의거와 구분해 제1차 마산의거로 부르는 것은 독자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부마민주항쟁과 4·19 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잇는 대한민국 첫 민주주의 시민운동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3·15 의거를 지역적 사건을 넘어 세계사적 보편성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추세다. 지난 8일 경남도의회에서 발의된 ‘3·15 의거와 부마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촉구’ 대정부 건의안이 14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는데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역사의 목소리는 페이지 속에 묻혀 있는 듯하나 실은 삼엄하고 준열하다. 70년 전 한 대통령의 공적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지금 정부의 행태는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아스럽다. 이를 논리적으로 보호하려는 보수우익의 일방적 움직임 역시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영구 집권을 꾀하며 선거제도를 유린하고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다. 공적보다는 과오가 절대적이다. 이미 당대 국민들이 내린 평가다. 이를 애써 외면한다면 이번 총선이 엄정한 민의의 심판대가 될지도 모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