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분 나들이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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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슴 시린 아름다움을 만나는 계절, 봄이다. 시인 이성부는 ‘봄’이란 시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했다. 이맘때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북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유독 잦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초록이나 연둣빛을 띤 고분(古墳)이 도심 곳곳에 있어 여행객의 눈이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흔히 ‘경주에선 고분을 보지 않고 살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경주 대릉원만 해도 천마총, 황남대총 등 20여 기의 고분이 모여 있을 정도다.

이맘때 부산 시민이라면 연둣빛 새싹,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을 만나기 위해 애써 경주까지 갈 필요는 없다. 부산에도 얼마든지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어서다. 바로 ‘부산 속 경주’라고 불리는 연산동 고분군이다. 물론 봉분 크기와 규모에선 경주 지역 고분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봉분을 높이 쌓은 고총(高塚) 고분군이다. 배산(盃山)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18기의 크고 작은 봉분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이 고분은 5~6세기 조성된 무덤들로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의 무덤 축조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어 영남 지역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2017년 6월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됐다.

올해로 다섯 번째 연제고분판타지축제가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온천천시민공원과 연산동 고분군 일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축제는 연산동 고분군이 부산시 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부터 시작돼 이어져 오고 있다. 중간에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 못 열린 적도 있지만, 동래읍성축제와 함께 부산 지역 대표적 역사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제는 벚꽃 피는 시기에 축제를 하다 보니, 시민들의 관심이 고분보다 벚꽃에 더 쏠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산 시민 중엔 아직도 연산동 고분군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 하여 아직도 가 본 적이 없다면 이번 축제 땐 가족과 함께 고분으로 나들이 한번 다녀오는 건 어떨까? 근처엔 다른 볼거리도 많다. 배산성지, 동래고읍성지, 수영사적공원도 있다. 온천천을 건너 동래 쪽엔 동래패총, 동래역(근대 건축), 동래읍성임진왜란전시관, 동래부 동헌, 복천동 고분군 등 부산의 역사와 과거 흔적들이 마치 구슬로 꿰어지듯 펼쳐진다. 부산의 문화자산을 키우고 가꾸는 것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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