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도 식품업계 '실적 잔치'… 정부, 가격 인하 압박
식품업계 지난해 최대 실적 거둬
직원 평균 급여액 상당폭 인상
세계식량가격지수 하락세 지속
농림부, 업체에 가격 조정 당부
사과를 비롯한 신선식품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지난해 최고 실적을 기록한 식품업계에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둔화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체감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민들이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식품 기업이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거두자 이들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러나 식품 기업들은 지난 2년간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한 데다 원재료 외에 제반 비용이 올랐다며 가격 인하에 난색을 보인다.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7.3으로 전달보다 0.7% 내렸다. 이 지수는 지난해 7월 124.6에서 지난달까지 매달 하락했다. 곡물 가격지수와 유지류 가격지수도 떨어져 식품 기업이 제품 가격을 내릴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곡물가격 지수는 2022년 3월 170.1을 기록했으나 지난 2월에는 113.8로 떨어졌고, 유지류는 251.8에서 120.9로 하락했다.
지난해 일부 식품 기업은 창사 이후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오리온이 지난해 연결 기준 4924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농심(2121억 원), 삼양식품(1468억 원), 빙그레(1122억 원), 풀무원(620억 원) 등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직원들의 급여도 상당 폭 인상됐다. 지난해 직원 1인당 연평균 급여액은 오리온이 88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10.0% 늘었고 빙그레는 약 6000만 원으로 11.8% 증가했다. 지난해 177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롯데웰푸드의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5600만 원으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지난해 서민들이 고물가와 고금리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 식품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직원들의 급여를 상당 폭 올린 것이다. 식품 기업 중에는 수출이 늘어 호실적을 낸 곳도 있다. 그만큼 가격을 인하할 여력도 생긴 셈이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13일 CJ제일제당, 오뚜기, 롯데웰푸드, 농심 등 식품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곡물과 유지류 등 식품 원재료 가격이 최근 많이 떨어진만큼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해 물가안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차관은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식품 가격을 인상했다면,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면 식품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물가안정에 협조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정부 권고로 라면, 빵, 과자 등 일부 제품 가격이 인하된 바 있다. 그러나 인하 품목이 한정되고 실적에 도움이 되는 주력 품목은 빠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식품 기업들은 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모양새다. 한 식품 기업 관계자는 “정부 물가안정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반 비용이 올랐다”며 “가격 인하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 기업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재료비 인상분을 감내하며 정부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해 왔는데 여기서 더 내리는 것은 사실 부담스럽다”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