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면 북적대던 문구점, 이제는 추억 속으로
2017년부터 매년 500곳 폐업
남아 있는 곳도 학생 거의 없어
가격 싼 온라인 마켓 등에 밀려
19일 오후 2시께 찾은 부산 해운대구 해강초 인근 상가에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분식집과 무인 아이스크림점, 편의점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복도 맨 끝 ‘해강문구’ 유리문을 여는 학생은 없었다. 문구점에는 적막만 흘렀다. 문제집, 색연필, 공책 등이 가득 찬 선반에 등을 대고 앉은 주인만 계산대를 지켰다.
오랜 기간 학교 앞을 지켜온 동네 문구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목’이라는 신학기에도 장사가 신통치 않다. 수업 준비물, 장난감에 불량식품까지 한때 학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췄던 문구점은 이제 편의점과 온라인 마켓, 무인가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해강문구가 현 자리에 들어서고 29년이 흘렀다. 24년간 문구점을 운영해 온 A 씨는 “한때는 신학기에 월 6000만 원을 찍을 정도로 학생이 몰렸다”면서 “이제는 신학기와 방학이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문구점을 찾는 학생이 줄었다”고 했다.
문구점 쇠퇴는 교육부가 2011년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를 시행했을 때부터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준비해 나눠주니 학생들이 굳이 문구점을 찾지 않아도 됐다.
대형 생활용품점과 온라인 시장, 무인가게들도 활성화됐다. A 씨는 “다이소 문구용품은 내가 봐도 문구점과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하더라”고 토로했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문구소매점 숫자는 2017년 1만 620곳에서 올해 7800여 곳까지 줄었다. 해마다 약 500곳의 문구점이 사라지는 셈이다. 학습 준비물을 학교에서 제공하고, 문구를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과 생활용품점이 곳곳에 생겨나면서 문구점은 경쟁력을 잃었다. 학령인구 감소도 또 다른 원인이다.
문구점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무인 문구점으로 전환하는 곳도 있다. A 씨도 궁여지책으로 5년 전 치킨집을 열었다. 카운터를 함께 지켰던 부인은 이제 치킨집으로 출근한다. 주말 저녁에는 A 씨도 치킨집에서 일을 돕는다.
최근에는 무인 문구점이 동네 문구점을 대체하는 추세다. 문구점에서 불량식품을 만지작거리던 해강초 학생 B 양은 “24시간 운영하고 집에서 가까워 주로 무인 문구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C 양도 “불량식품도 문구점에서 잘 안 사 먹고 무인 아이스크림점에서 사 먹는다”고 말했다.
A 씨는 “2000년대 초 이 동네만 해도 문구점이 40개였는데 이제 남은 곳은 4개뿐”이라면서 “매출이 월세만큼도 안 나오다 보니 가게를 내놓으려 해도 가지고 갈 사람이 없다. 이제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