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심장과 신장 늙지 않게 하는 약
박정현 인제의대 내과 교수 동남권항노화의학회 회장
최근 의학계에서는 당뇨병 환자 혈액 속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배출해 혈당치를 낮추는 SGLT2 억제제라는 약물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약은 당뇨병 환자의 혈당치를 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초 개발됐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 보니 혈당치만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심부전에 의한 병원 입원을 줄이고 심장 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이 나타났다. 또한 신장의 기능을 보존하는 효과도 탁월해서, 당뇨병 환자에게 장기간 투여하는 경우 신장 기능을 10년 이상 더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좋은 효과들이 당뇨병이 없는 환자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 임상시험을 통해 밝혀지면서, 혈당치를 낮추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직접적인 작용들을 통해 이런 효과들이 나타나는 것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약은 직접 신장과 심장에 작용을 해서 이들 두 장기에 발생한 만성 염증을 억제함으로써 장기들의 손상을 최소화한다. 당뇨병이나 동맥경화증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게 되면 심장과 콩팥 조직에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염증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만성적인 염증은 궁극적으로 정상 조직을 손상시키고 섬유화를 통한 흉터 조직을 생성함으로써 다양한 기능을 가진 섬세한 조직을 영구적으로 파괴하게 된다. 심한 산화 스트레스에 의해 노화 상태에 빠진 조직 세포들은 염증을 초래하는 물질들을 계속 분비하여 주변 조직의 노화도 촉진하는 상황을 초래하는데, 이 약물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주는 효과가 있다. 노화의 기본적인 병태 생리인 만성 염증을 직접 억제함으로써 해당 기관에 대해 항노화 효과를 나타내고, 이를 통해 심장과 신장을 젊은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심부전이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을 억제하고, 신장 보호 효과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이 약물이 가진 노화 억제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항노화 임상연구도 계획되고 있다.
만성질환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어 온 약제들이 만성 염증을 억제함으로써 국소적인 항노화 효과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음은 최근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필자의 실험실에서도 당뇨병 치료를 위해 많이 사용되는 DPP-IV 억제제라는 약물과 오메가 3 지방산의 하나인 EPA가 강한 산화 스트레스가 가해진 혈관 세포의 노화를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음을 여러 편의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노화 과정이 만성 염증에 의해 악화될 수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약 한 알로 우리 몸 전체의 노화를 억제하고 영원한 젊음이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직은 요원하다. 하지만 심장과 혈관, 그리고 신장 등 특정 장기의 만성 염증을 경감시켜 장기의 노화를 지연시키고 기능을 젊게 보존할 수 있는 약물은 이미 우리 주변에 제법 있다. 이들을 적절히 사용해서 질병의 진행을 막고 기능을 보존하여 해당 장기들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날은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