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자연을 먹고 마시는 일상이 예술
■김순임의 '홈플러스 농장 Home+Farm'
2006년 무렵부터 현대미술가 김순임(1975~)은 나뭇잎, 나뭇가지, 돌멩이 등 쓸모없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을 정성껏 모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작업을 해왔다. 나뭇가지 더미를 세워 만든 ‘터 잃은 이들의 숲’(2011)이나 오래된 빨래터의 물이끼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빨래터에 뜬 달’(2017)과 같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품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대변한다. 미술계의 주목 받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키우는 여타 미술가와 달리 김순임은 자신의 소리를 절제하고 최소한의 흔적만 남겨왔다. 그녀의 소박한 작업에서 1960년대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가속되는 산업화의 비인간화와 근대미술의 이념주의적인 예술정신을 비판하는 미술운동으로 여기에 담긴 핵심 정신은 미술이 인간의 삶과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의 본질 외에 불필요한 것은 취하지 않는 무소유적 특성을 가졌기에 이탈리아 비평가 첼란트(Germano Celant)는 이 같은 예술의 유형을 아르떼 포베라(가난한 예술)이라고 칭했다.
지역의 자연 재료로 장소와 사람을 연결해온 그녀의 예술에서 아르떼 포베라 정신을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관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2017년부터 아르떼 포베라를 넘어 보다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일상과 예술을 일체화시키는 작업이 눈길을 끈다. ‘자연을 먹고 마시고 Nature in Food’라는 시리즈 작업으로 자연의 재료를 발견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연을 키우고 먹고 배설하는 일상의 행위를 예술로 바라보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이 중 ‘홈플러스 농장 Home+Farm’은 대형마트에서 못생겼거나 흠이 있다는 이유로 할인 판매되는 식품을 사먹고 그 씨앗을 폐플라스틱 용기에 키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23년 부산현대미술관 ‘노래하는 땅’ 전시에서 이 작품을 로비에 구성하여 운영하였는데 옥수수, 방울토마토, 레몬, 용과, 아보카도, 고추, 파 등등 다양한 식물을 키웠고 남은 씨앗 주머니를 벽면 가득 붙여 관객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식물을 키워 먹는 행위가 예술로 해석될 수 있는 기저에는 현대인의 약해진 생명의식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 규격화된 식자재와 현대의 소비 시스템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생명’을 예술 안으로 끌어와 사유하게 만든 것이다. 작가는 마트에서 구입한 것은 생명으로 이것은 내 몸의 일부가 되고 나라는 존재는 다양한 생명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자연의 작은 사물에서부터 일상의 사소한 행위까지 다양한 모습에서 예술의 본질을 간파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김순임의 작품을 접할 때면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박한나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