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메스티 “시적이고 포근한 비올라 마법 경험하시길”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이 시대 최고 비올리스트 명성
베를린필·뉴욕필 등 일정 빼곡
“통영 청중·스태프 열정에 감동”
“해롤드(비올라 연주자)는 하프와 현악기, 호른과 바순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무대에서 쫓겨나고 말죠. 마침내 무대 뒤에서 두 대의 바이올린, 1대의 첼로와 함께 콰르텟(현악 4중주)을 이루게 됩니다. 사실 악보에는 ‘오프 스테이지 밴드(관현악단의 일부가 무대 밖에서 연주)’로 나와 있는데 비올라가 그 안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여기서부터는 제 해석인 거죠. 무대에서 뛰쳐나간 해롤드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프 스테이지 밴드에 함께하는 이상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비올라 역할이 핵심인 협주곡 ‘이탈리아의 해롤드’(베를리오즈 곡) 연주로 관객들의 관심과 박수를 한 몸에 받은 프랑스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44)의 말이다. 타메스티는 이날 연주 도중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는 이색 연주를 선보였다. 국내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해롤드의 유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극적인 무대 해석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비올라는 시의 주인공이자 방황하는 해롤드를 나타냅니다. 등퇴장을 반복하는 아이디어는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자에게서 처음 나온 것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둘이서 계속 업데이트했고요, 최근에는 제 생각을 좀 더 얹어서 완성했습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보니 많이 참고하면서 발전시켰습니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들을 때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듯한, 그런 내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왜 ‘지금 이 시대 최고의 비올리스트’로 칭송받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심오한 곡 해석만큼이나 완벽한 테크닉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돋보였다. 내로라하는 현대 작곡가의 비올라 신작 초연도 그의 몫이다. 이렇듯 그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정교한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 역사의 폭을 아우르는 만큼이나 다양하고 깊다고 한다. ‘누가 비올라 레퍼토리가 부족하다’고 했나 싶을 정도다. 특히 그가 연주한 비올라 편곡 버전 작품은 편곡에 대한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타메스티는 지금까지 스무 장이 넘는 디스코그래피를 남겼다. 이런 그이지만 “제 나이 마흔넷, 마흔다섯이 되는데 이제 유명 대형 오케스트라와 함께 데뷔한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마침내 꿈을 이뤄 기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올해 잡힌 연주 일정을 들려준다.
“지난 1월엔 비트만의 비올라 협주곡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에 데뷔했습니다. 4월에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5월 뉴욕필, 그리고 9월에는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합니다. 통영과 빈에서 외트뵈시 비올라 협주곡 ‘응답’의 새로운 버전을 연주하고, 뮌헨에서는 바바리안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프란체스코 필리데이의 새로운 협주곡을 세계 초연합니다. 히사이시 조 지휘로 녹음한 ‘비올라 사가’ 음반도 4월에 나올 예정입니다. ‘비올라 사가’는 이미 도쿄, 나고야, 오사카, 마카오 등에서 4차례 연주하고, 녹음은 빈에서 마쳤습니다.”
타메스티는 진은숙 예술감독, 특히 진 감독 남편인 마리스 고토니(벨기에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디렉터)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밝혔다. “레지던시(상주 음악가)는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현대, 심지어 새로운 작품까지 만들기 때문에 정말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레지던시입니다. 내년에는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니와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홀에서 시즌 내내 비올라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운이 아주 좋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좋은 음악제’란 어떤 것인가 질문했다. 그러자 타메스티는 “오늘 아침 고토니와 토론한 내용도 바로 그것”이라면서 “아이디어와 열정이 가득하면 좋은 축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곳 통영에 와서도 느꼈지만, 모두의 참여와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이 일을 하는데 열정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청중 역시 아주 열정적이며, 무대 뒤편의 스태프 역시 매우 열정적이고 지식이 풍부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는 비올라에 열정적이고,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이번 초청에 응했으며, 그들은 내가 줄 것이 많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타메스티에게 비올라의 매력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다. 그는 세 가지를 언급했다.
“저는 어릴 때 비올라를 하기 전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두 악기 모두 사랑했지만,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매개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렇게 작은 악기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낮게 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세 번째는 비올라 음색은 중음역에선 최고라는 점입니다. 정말 손에 닿을 것 같은 음역대이기 때문에 시적이고 포근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람들이 제 이름을 기억하기보다는 비올라의 매력에 감동받으면 좋겠습니다. 열 살 이후 비올라와 사랑에 빠진 저는 다른 분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 싶어서 사명감 같은 걸 느낍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