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사업자 속여 휴대전화 896대 개통… 중고로 넘겨 15억 챙긴 일당 검거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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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대출 빌미로 수백 명 속여
단말기·유심칩 국내외 팔아넘겨

부산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사용된 명의자 서류.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사용된 명의자 서류.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에서 대출을 빌미로 급전이 필요한 영세 사업자 등에게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만들고, 중고 시장에 단말기와 유심을 팔아넘기면서 할부 대금을 떠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하지 못하도록 부동산 작업 대출이라는 불법 행위에 연루됐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피해자 1명은 뒤늦게 사기란 점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A(47) 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휴대전화 개통·모집 담당자와 장물업자 등 13명이 불구속 입건됐고, 개인정보 등 명의를 빌려준 피해자 72명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휴대전화 대리점을 위탁 운영한 A 씨는 지역별 모집책을 동원해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약 15억 8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3년간 영세상인 319명 명의로 가개통 휴대전화 896대를 개설했고, 중고업자에게 팔아넘긴 뒤 통신사에서 개통 수당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사기 사건 개요. 부산경찰청 제공 휴대전화 사기 사건 개요. 부산경찰청 제공

경찰에 따르면 A 씨 일당은 부동산 작업 대출을 빌미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 명의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개통한 휴대전화 단말기와 유심은 해외와 국내에 중고로 넘겼고, 할부 대금은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대출을 해주지도 않은 데다 해줄 능력도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A 씨 일당은 돈이 필요한 영세업자 등에게 접근해 “매매가 안 되는 건물을 임대해 전세 대출을 받아 주겠다”며 “대출을 하려면 본인 인증을 위해 휴대전화 개통이 필요하다”고 속인 뒤 개인 정보를 요구했다.

경찰은 A 씨 등이 피해자에게 신분증, 위임장, 개통 사실 확인서 등 각종 휴대전화 개통 서류를 받은 뒤 통신사에 제출해 최대 5대까지 최신 휴대전화를 개통했다고 밝혔다. 유심칩은 다른 휴대전화에 꽂아 일정 기간 사용하는 방식으로 통신사 의심을 피했다.

피해자들에게 대출금 500만~1000만 원 대출금이 나올 예정이라고 속였고, 심사 중이거나 서류를 준비 중이라 변명하며 시간을 끌다 연락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A 씨 일당이 피해자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부산경찰청 제공 A 씨 일당이 피해자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부산경찰청 제공

피해자들은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불법인 부동산 작업 대출에 개인 정보를 제공했다고 생각해 쉽게 신고하지 못했다. 그중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1명은 급히 돈을 빌리려다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최해영 팀장은 “명의자와 개통업자가 공모하는 일반적인 휴대전화 범죄와 달리 명의자가 부동산 작업 대출이라는 불법에 연루됐다고 오인하게 만드는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기 불황으로 사금융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휴대전화 개통에 명의를 제공하는 경우 사기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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