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팝 이끄는 ‘김효근 가곡’, 청중도 성악가도 푹 빠졌다
경영학자면서 숱한 히트곡 내
대중적 선율·서정적 가사 ‘매력’
24일 부산문화회관 공연 해설
수요자 기반 ‘아트링커’ 운동도
가곡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눈’, ‘첫사랑’, ‘내 영혼 바람 되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작곡자는 김효근(64)이다. 1년 열두 달 통틀어 가곡이 불리는 무대라면 김효근의 곡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가곡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토록 수많은 성악가가 앞다퉈 찾는 곡이 되었을까. 일반 대중과 성악가들은 “아름답고 대중적인 선율, 서정적인 가사의 완벽한 조합”을 그 비결로 꼽는다.
오는 2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릴 예정인 ‘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가장 아름다운 노래’ 공연을 앞두고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전업 작곡가가 아닌, 경영학자이다.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교수는 부산 공연에 직접 참석해 해설도 진행한다.
“의도한 건 아닌데 지난 2019년 인천에 이어 2022년 서울 예술의전당 ‘김효근 K-아트팝 로맨틱 가곡의 밤:가장 아름다운 노래’ 형식으로 대구, 대전, 화성, 고양, 일산 등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공연을 하고 있어요. 부산서는 2022년 금정문화회관 기획 공연으로 선보인 적이 있는데, 그땐 피아노(피아노 트리오) 반주였고, 이번엔 오케스트라 연주로 첫선을 보입니다. 부산 성악가들이 노래할 거고요.”
이번 부산 공연은 3부로 나눠서 1부 사랑의 노래, 2부 그리움의 노래, 3부 꿈과 희망의 노래로 전개한다. 전부 김 교수가 작곡한 곡들이다. 1부는 ‘사랑의 꿈’ ‘첫사랑’ ‘영원히 사랑해’, 2부는 ‘내 영혼 바람 되어’ ‘천년의 약속’ ‘푸르른 날’ ‘이별:아름다운 이별’, 3부는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꿈의 날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들려주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 함께 부르며 마무리한다.
“공연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가지 포맷이 생겼어요. 2시간짜리 프로그램일 때는 인생을 네 가지 라이프 사이클로 나눠서 곡을 소개하고요, 이번처럼 90분짜리는 중간휴식 없이 3부로 구성하면서 사랑 3종 세트, 그리움 4종 세트, 꿈과 희망 3종 세트를 들려줍니다. 1981년 대학가곡제 대상을 받은 ‘눈’부터 코로나 힐링 곡으로 사랑받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비교적 최근작인 ‘가장 아름다운 노래’ 등을 성악가들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트팝’으로 명명된 김효근표 가곡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옛날 가곡과는 다른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하다 가곡의 예술성은 그대로 가져간다는 의미로 ‘아트’, 거기에 대중성을 접목한다는 뜻으로 ‘팝’, 그렇게 ‘아트팝이’ 탄생했습니다.”
2010년 첫 아트팝 가곡 앨범 ‘내 영혼 바람 되어’는 그 기폭제가 됐다. 그 배경에는 절실함이 있었다. “1970, 80년대 우리 가곡의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가곡이 외면받기 시작했지요. 경영학자로서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진단하기 시작했어요. 가곡계 한쪽에서는 대중이 소화하기 어려운 현대음악 어법으로 곡을 쓰는 분들이 계셨다면, 다른 한쪽 재야에선 70~80년대 작곡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 대중음악과 영화음악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죠. 세련되게 진화했어요. 대중에게 선택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 거죠.”
그가 택한 방식은 가곡의 강점인 시와 선율의 서정성을 살리고, 약점인 화성과 리듬을 세련되게 보완하는 것이었다.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로 했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적 요소를 작곡에 반영하려고 애썼어요. 가사나 시는 평생에 걸친 삶의 여정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이별, 그리움, 인생 등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한국 가곡의 발음, 딕션(diction)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가사 전달을 위해 한때 ‘리허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성악가들이 가온 다(도)보다 한 옥타브를 넘어서는 벨칸토 발성을 하다 보면 두성을 사용하고, 레가토(둘 이상의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를 중시하게 돼 한글 자음 발음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저는 한국어 벨칸토에는 발성 위치가 유러피안보다 이마 앞쪽으로 15도쯤 나오도록 설명하고 있어요. 최근 졸업생들은 이미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멀리 떨어진 관객이 들어도 100%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가사(발음)가 들려야 감정선이 바로 공감될 수 있거든요.”
‘경영학자 작곡가’로서 가진 강점을 십분 발휘하는 셈이었다. 연구하고, 분석하고, 개선해 아트팝을 만들었다. 청중이 먼저 움직였고, 성악가들이 뒤따랐다. 김효근의 뒤를 이어 최진 작곡가의 ‘시간에 기대어’, 윤학준 작곡가의 ‘마중’, 이원주 작곡가의 ‘연’ 등이 시차를 두고 히트하면서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이제 내년 8월이면 정년을 맞는다. 정년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경영학자로 40년 정도 해 온 일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영 방식은 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데 아무도 해 보지 않은 것을 만들 때는 예술가의 창작 원리가 필요합니다. 즉, 예술창작 활동의 원리와 대중화 원리를 현대 기업경영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거꾸로 기업의 경영 원리는 음악 등 예술에 활용할 수 있을까 등 두 활동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내 최초의 예술 종합 플랫폼인 ‘아트링커’ 확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예술판 같은 플랫폼을 지난 6년간 만들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그가 제시한 방책이 공급자 중심의 비상 대책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요자 확대로, 수요자를 일상의 예술로 연결하는 운동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두고, 거대한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공연계, 문화예술 전반은 살아가기 힘든 ‘경제 불균형’ 상태가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예술을 연결하고, 예술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길 바랍니다. 앱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신이 들은 음악과 관람한 공연, 전시를 앨범처럼 기록할 수 있어요. 일종의 취향 저장소입니다. 예술가들은 자기 작품을 공개하고 판매하거나 레슨도 할 수 있고요. 당장 이번 부산 공연 때 공연 팸플릿을 핸드폰으로 보고 저장하는 ‘e-아트북’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가장 아름다운 노래=24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주최 부산문화. 진행·해설 김효근, 지휘 최영선, 연주 아르떼 오케스트라. 출연 소프라노 박현진·김소율·권소라, 테너 이태흠·석정엽, 바리톤 강경원. 입장료 VIP석 8만 원, R석 7만 원, S석 5만 원, A석 3만 원.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