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열린 뱃길인데…통영 오곡도 여객선, 관광객 막는 족쇄?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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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
승선 대상 ‘주민등록상 주민’ 한정
정작 방문자는 여객선 이용 못해
헛걸음 관광객, 주민도 볼멘소리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에서 오곡도를 오가는 섬나들이호. 김민진 기자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에서 오곡도를 오가는 섬나들이호. 김민진 기자

“관광객은 못 탑니다.” 평소 섬 나들이를 즐기는 김상훈 씨. 그동안 배편이 없어서 가보지 못했던 통영 오곡도에 얼마 전 정기여객선이 취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산양읍 달아항을 찾았지만, 매표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곡도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권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김 씨에게 창구 직원은 “법이 그렇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소외도서 항로(달아항~오곡도) 운항 도선을 오곡도 주민 이외에는 승선하실 수 없습니다 <해양수산부·경상남도·통영시>’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김 씨는 “할인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내고 타겠다는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18년 만에 열린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오곡도 뱃길이 반쪽짜리가 돼 버렸다. 정기여객선 승선 대상을 ‘섬 주민’으로 제한한 해양수산부 지침 탓에 정작 수요가 많은 관광객은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도와 통영시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산양읍 달아항~오곡도(작은마을, 큰마을) 정기여객선 항로에 ‘섬나들이호’가 운항을 시작했다. 섬나들이호는 승객과 차량, 화물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는 33t급 카페리다. 승선 정원은 40명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2회 왕복한다.

오곡도는 섬 형상이 까마귀를 닮은 외딴섬이다. 과거 50가구, 300여 명이 넘는 주민이 살다 지금은 9명만 남았다. 2006년 정기여객선이 운항을 중단하고 도선 등 대체 교통편도 마련되지 않으면서 고립된 섬이 돼 버렸다. 이에 통영시는 도선사업 허가권을 쥔 통영해양경찰서와 협의를 거쳐 해수부가 주관하는 ‘소외도서 항로 운영 지원사업’을 토대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정기 교통편이 없는 도서낙도 주민 이동 편의를 위한 사업이다. 항로가 개설되면 국비(50%)와 도·시비(50%)를 투입해 여객선 운영에 필요한 유류비와 인건비 전액을 지원한다. 덕분에 섬 주민은 무료다. 그런데 지원 지침에 지원 대상을 ‘주민등록상 (섬) 주민’으로 한정하면서 관광객은 여객선 승선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제대로 된 사전 공지나 안내도 없어 헛걸음했다는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 지침이 관광객 유입을 막는 족쇄가 되면서 오곡도 주민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 매표소에 붙은 안내문(왼쪽)과 섬나들이호에 내건 취항 축하 현수막. 김민진 기자 통영시 산양읍 달아항 매표소에 붙은 안내문(왼쪽)과 섬나들이호에 내건 취항 축하 현수막. 김민진 기자

통영시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해수부 지원을 받는 모든 항로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면서 “각종 민원이 접수되고 있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현재 해수부는 통영 오곡도를 비롯해 고성 자란도, 전남 여수 대운두도, 소두라도·소횡간도, 추도, 완도 다랑도, 초완도·넙도, 신안 효지도, 충남 태안 외도, 제주 횡간도·추포도 등 10개 항로를 같은 조건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2027년까지 4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지침을 손보지 않으면 불만 여론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해수부는 뒤늦게 지침 개정 검토에 나서기로 했다. 또 개정 전이라도 지자체 요청이 있다면 일부 유료 승객 승선을 허용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침에 모든 예외사항까지 담을 순 없다”면서 “지자체에서 의견을 물으면 재정당국과 협의해 지자체 조례를 통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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