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놓고 멍때리기, 여기보다 좋은 곳 또 있을까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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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월아산 숲속의 진주’]

작가의 정원 푸른 숲 보며 ‘마음 놓기’
개구리 수십 마리 합창에 반가움 앞서
후투티 정원 재미있는 목각인형에 미소

싸고 쾌적한 호텔형 글램핑장 보고 솔깃
안락의자 앉아 구름 보며 심신이 스르르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 이어지면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날에는 그나마 미세먼지가 적어 숨을 쉬기가 용이한 숲속에서 산책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이달에 개장 6주년을 맞은 경남 진주시 진성면 ‘월아산 숲속의 진주’에 다녀왔다. 숲속에서 산책하거나, 하룻밤을 묵으면서 심신을 달래거나 아니면 넋을 놓고 멍때리기에 좋은 산림복지시설이다.

다양한 목각인형과 영산홍이 조화를 이루는 후투티 정원은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남태우 기자 다양한 목각인형과 영산홍이 조화를 이루는 후투티 정원은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남태우 기자

■숲속에서 산책을

월아산 숲속의 진주는 남해고속도로 진성IC에서 불과 5분 거리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나뭇가지가 터널을 이룬 것 같은 한적한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 주차장은 네 곳이 있는데, 어디에 세우더라도 숲속의 진주를 한 바퀴 돌면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주차장 중에서 가장 바깥쪽인 제2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 주차장 정면에 푸른 신록이 우거진 숲이 낯선 여행객을 환영하듯 두 팔을 한껏 벌리고 환하게 웃는다. 눈을 깨끗이 씻어 내고 심신을 쾌적하게 만들기에 손색이 없는 풍경이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대나무 숲과 나무 덱, 각종 작품으로 이뤄진 ‘작가의 정원’이 나타난다. 이곳의 이름인 듯 ‘청림월연(淸林月淵)’이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숲 아래 달빛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인데, 달빛이 빛나는 밤에 이곳의 풍경이 꽤 아름다운 모양이다.

현대식 정자인 선정에서는 선선한 바람 아래 낮잠을 즐기거나 멍때리기를 하기 제격이다. 남태우 기자 현대식 정자인 선정에서는 선선한 바람 아래 낮잠을 즐기거나 멍때리기를 하기 제격이다. 남태우 기자

간판 앞에 ‘선정’이라는 현대식 정자가 보인다. 정자라기보다는 사방이 모두 트인 너른 마루나 마찬가지다. 마루에 편히 앉아 앞을 내다보면 주차장과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느낌은 똑같은 푸른 숲이 보인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꽤 더운 날씨를 약간이나마 식혀 준다. 마루 끝에 앉거나 위에 누워서 멍때리기를 하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바람을 따라 사그락사그락거리는 대나무 숲을 따라 내려가자 오래 전 시골 고향에서나 듣던 놀라운 합창이 귓가에 울린다. 바로 ‘개골개골 개골개골’ 하는 개구리 울음소리다.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다. 반가우면서도 신기한 마음에 서둘러 달려가자 대나무 숲 아래에 조성된 연못 한쪽 구석에 개구리 수십 마리가 모여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많은 개구리를 한꺼번에 본 게 얼마만인지.

연못을 한 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는 아담한 건물이 있다. 어린이들이 숲에서 편하고 즐겁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숲속 어린이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지나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숲길 곳곳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보인다.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을 하러 온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목공체험장이 나오고 제3주차장도 보인다.

산책을 나온 여성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산책을 나온 여성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태우 기자

두 곳을 지나면 재미있는 목각인형이나 봄꽃인 영산홍과 함께 사진을 찍기 좋은 ‘후투티 정원’이 나온다. 목각인형 모양은 여러 가지다. 돌담에 앉아 책을 읽는 인형에서부터 그네를 타는 어린왕자와 천사 날개, 나무에 붙은 각종 곤충 인형까지 각양각색이다. 후투티 정원의 한쪽 구석 벤치에는 모자로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린 채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목각인형이 그늘 아래에서 독서를 하는 후투티 정원. 남태우 기자 목각인형이 그늘 아래에서 독서를 하는 후투티 정원. 남태우 기자

후투티 정원을 지나면 초봄에 수선화로 유명한 ‘수선화 정원’이 나온다. 정원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고 풍경은 아름답다. 수선화가 만개했을 때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야말로 ‘인생 샷’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지금은 수선화가 다 진 상태여서 꽃을 볼 수는 없다. 그래도 푸른 수선화 줄기가 남아 분위기를 꽤 독특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수선화가 모두 진 수선화 정원. 그래도 사진을 찍으면 좋은 그림이 나온다. 남태우 기자 수선화가 모두 진 수선화 정원. 그래도 사진을 찍으면 좋은 그림이 나온다. 남태우 기자

■숲속에서 하룻밤을

수선화 정원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월아산 숲속의 진주 최상단이다. 이곳에서는 방향을 바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월아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월정마을도 보인다.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인 만큼 이곳에는 독특한 시설이 있다. 바로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숲을 즐기고 새벽에는 쏟아지는 별도 구경할 수 있는 캠핑장과 글램핑장, 그리고 숙박형 건물인 ‘숲속의 집’이다.

글램핑장의 시설은 특급호텔 못지않게 깔끔하고 편리하게 조성됐다. 하룻밤 숙박 가격이 10만~12만 원대이니 비싸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평일인데도 글램핑장은 늘 만원인 모양이다. 전날 밤 글램핑장을 이용한 숙박객이 떠난 뒤라서 방을 청소하는 직원들의 일손이 분주해 보인다. 일정 때문에 글램핑장에서 1박 2일 여행을 즐길 수 없었던 걸 아쉬워하면서 ‘다음에는 꼭’이라고 다짐한다.

토끼 장식이 설치된 글램핑장. 시설이 깔끔하면서 가격도 싸 하룻밤 이용해 볼 만하다. 남태우 기자 토끼 장식이 설치된 글램핑장. 시설이 깔끔하면서 가격도 싸 하룻밤 이용해 볼 만하다. 남태우 기자

글램핑장 앞에 마련된 특이한 안락의자에 앉아 본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지나가고 가끔 새 울음소리도 들린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드디어 이곳에서도 멍때리기가 시작됐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은 물에 녹는 듯 스르르 풀린다. 이곳은 멍때리기 천국이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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