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대통령의 소통, 진정성 필요하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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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과 기자회견 잇따라 가져
선제적·자발적이지 않아 의미 반감
정치적 수세 모면하려는 성격 강해

대통령실 옮긴 이유는 소통 위한 것
대통령 불통이 여당 총선 참패 낳아
3년간 국민·야당과 긴밀히 소통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윤 대통령은 이에 맞춰 하루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 운영과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이어 1년 9개월 만에 두 번째 열린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이번 회견은 윤 대통령이 취임 초기 출근길에 행한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한 지 500여 일 만에 마련한 실질적인 첫 대국민 접촉이다. 그동안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발언,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담화, 신년 대담 등 형식으로 대통령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밝히기는 했다. 그런데 질의응답이 오가는 공개 기자회견은 오랜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없앤 민정수석실을 새로 설치하기로 했다. 이날 즉시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대통령실에서 매우 약해진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민정수석실 복원 이유다. 지난달 29일에는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간 회담이 열렸다. 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성사된 영수회담으로, 실종된 여야 협치의 가능성이 엿보인 데 의의가 있다.

여야 영수회담, 민정수석실 부활, 대국민 기자회견. 연이어 벌어진 일들은 의미와 파급력이 작지 않다. 이 사안들만 놓고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윤 대통령이 소통을 중시하고, 이를 위한 실천에 노력하는 걸로 착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세 가지는 자발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는 게 엄연한 진리다. 애초부터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계획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어서 그 의미를 반감한다.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나머지 위기를 모면하거나 돌파구를 찾으려는 궁여지책에서 비롯됐다.

이런 사실은 윤 대통령이 평소 영수회담을 원치 않은 데서 먼저 확인된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거야의 협조가 필요한데도 민주당 이 대표의 수차례에 걸친 회담 제의를 무시했다. 각종 형사사건 피의자인 이 대표를 대통령과 동급으로 예우하고 강력한 대선주자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싫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민정수석실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 시절 사정기관 장악 등에 악용된 민정수석실 폐지를 자주 강조하며 공약으로까지 내걸었던 윤 대통령이다. 그러다가 야당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민심 파악을 내세워 부활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2022년 11월 이후 소통 부재라는 여론의 지적 속에서도 더는 이행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9일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쌍방향 기자회견도 안 내켰을 테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진행 여부를 두고 전망이 갈렸을 정도다.

꿈쩍하지 않던 윤 대통령이 소통에 관심을 보이며 국민 및 야당과 대화에 나서도록 만든 건 제22대 총선 결과다.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무려 171석을 차지하고 국민의힘은 108석 확보에 그친 집권 여당의 참패에 기인한다. 더욱이 선거 참패가 윤 대통령의 오만하고 독단적인 불통식 국정운영 탓이란 지적이 여당 안팎에서 잇따르는 실정이다.

총선 직후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8.0%가 윤 대통령을 총선 참패 책임자로 꼽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목한 이는 10.0%에 불과했다. 심지어 여당 지지층은 윤 70.4%, 한 11.3%로 대통령의 책임을 더 무겁게 여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 중반~30%대 초반의 바닥 수준을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윤 대통령의 잇단 조치는 총선 패배로 수세에 몰려 낮은 지지율을 의식한 산물이긴 하지만, 아집과 독선이 강했던 이전과 다른 모습인 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상반된 여야 평가가 나온 9일 기자회견에서도 “여야 정당과 소통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많이 늦은 감이 있으나 남은 임기 3년을 위해 고무적인 자세다. 윤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국민과의 소통을 든 바 있어서다. 더 이상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 나가며 국민 신뢰를 높여야 할 때다.

그러려면 진정성이 관건이다. 대통령 자신이 소통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소통 방법에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진정한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먼저 국민 곁으로 바싹 다가서고, 특히 고물가·고금리에 힘겨운 서민과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 앞으로 3년간 주력해야 할 민생 안정 등 원활한 국정수행에 절실한 여야정 대화와 협치를 잘 이끌어 내도록 열린 마음과 겸허한 자세도 요구된다. 국민 행복을 위해 환골탈태한 소통을 바란다. 진보·보수층 다수가 지지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까닭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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