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화의 소녀상 훼손,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
지은주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행동 대표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 역사가 지키지 못한 우리의 딸이자, 할머니를 표상한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평화의 소녀상 발뒤꿈치를 보시라. 불편하게도 들려 있다. 이는 조국 땅에서조차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을 상징한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채 움켜쥔 두 주먹에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그런 평화의 소녀상이 또다시 수난을 겪고 있다.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달 6일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그 위에 테이프로 부착된 흰 마스크에 ‘철거’라는 문구가 쓰인 채 발견됐다. 해당 장면은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에 올랐고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어 27일에는 일본 맥주와 초밥을 소녀상에게 먹이고, 맥주 캔을 소녀상 머리 위에 올려 놓은 모습까지 촬영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20만 명이 넘는 조선의 처녀가 전쟁터에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이 왜 지금 이런 모욕과 혐오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소녀상은 2016년 기초지자체의 강제 철거 등 마찰을 빚다 가까스로 지금 자리에 건립이 된 뒤에도 쓰레기 투척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에 부산 시민사회가 힘을 모은 결과 소녀상을 보호·관리하는 부산시 조례가 만들어졌고, 지금의 자리에서 잘 보존되어 왔다. 한데, 최근 친일 극우 세력의 노골적인 혐오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소녀상에 검은 비닐봉지와 마스크를 씌운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목적지도 모른 채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소녀들의 처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인권의 가치를 생각할 때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범죄적인 일이다.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은 즉시 재물손괴죄와 모욕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도 “‘혐오 마스크’ 챌린지에 충격을 받았다”며 저작권 침해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인정이나 사죄를 요구하지 않은 채 과거사를 덮고 미래로 가자는 외교 방향을 제시한 뒤 친일 극우 세력의 공세가 노골화된 측면이 있다. 부산의 소녀상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의 소녀상도 유사한 핍박을 받고 있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은 전국의 소녀상을 찾아다니며 ‘일본군 위안부는 가짜’라는 주장을 하면서 소녀상 철거까지 요구하고 있다. 일본 극우와 누가 더 극단인지를 다투는 모양새라 어처구니가 없다.
최근에 기승을 부리는 소녀상 훼손 행위는 부산 시민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모욕감을 주고 있다. 부산시 조례는 부산시와 동구청, 시민사회가 함께 부산 동구 평화의 소녀상을 보호·관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특히 이 조례는 부산시장이 기념 조형물을 보호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소녀상을 보호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부산시민이 세운 소녀상을 훼손하는 행위가 엄벌에 처해질 수 있도록 행정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해 부산 시민이 힘과 뜻을 모아 세운 소녀상이 더 이상 유린당해서는 안 된다. 고인이 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부산 시민사회는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