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라인을 틱톡처럼?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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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국장

데이터 쌓이는 플랫폼은 새 전장
신냉전에 적대국 플랫폼 퇴출 양상

美, 틱톡 매각 강제법안 의회 통과
일본도 ‘라인 지분 팔아라’ 행정지도

해외서 성공한 K-플랫폼 퇴출 위기
일 정부 압박엔 우리 정부가 나서야

바야흐로 플랫폼 전쟁 시대입니다. 실생활 곳곳에 파고든 갖가지 모바일 플랫폼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인공지능(AI)은 이를 학습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습니다. 생성형 AI를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하려는 개발업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데이터입니다.

네이버 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 관련 뉴스가 연일 관심을 끌면서, 틱톡과 본사인 중국의 관계를 끊게 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연상되었습니다. 적대국 사이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왜 군사 정보까지 교류하는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걸까요.

지난 4월 23일 미국 상원은 270일 내(1회 90일 연장 가능) 틱톡 지분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하고, 기간 내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틱톡은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숏폼 영상 공유 플랫폼입니다. 미국 내 틱톡 이용자 수는 약 1억 7000만 명에 이릅니다.

미국 정치권에선 2019년부터 틱톡에 남는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제공되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틱톡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압박했고, 5년 만에 법안 통과까지 마무리한 것입니다. 바이트댄스 측은 지난 7일 연방순회항소법원에 법안의 시행 중단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중국도 지난 3월 미 하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자, 외교부 논평을 통해 “공평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괴롭힘을 선택한 것”, “어지럽혀진 것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고, 훼손된 것은 투자 환경에 대한 국제 투자자의 자신감이며, 파괴된 것은 정상적인 국제 경제·무역 질서”라고 비판했습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만든 A홀딩스가 대주주(지분율 64.5%)인 라인야후는 일본 메신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아시아권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억 8000만 명에 이르는 인기 메신저입니다.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 대부분을 네이버가 담당한, 성공적인 ‘K-플랫폼’ 진출 사례입니다. 일본 정부의 압박은 지난해 9월 51만 건의 이용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빌미가 됐습니다. 서버는 일본에 뒀지만, 내부 사원 인증은 한국의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했는데, 해커가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라인 이용자 정보를 가져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3월 1차 행정지도 때는 사원 인증을 포함한 모든 사이버 보안 업무를 일본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분기별로 보고서를 받아보고 이행 조치를 점검한다던 일본 총무성은 한 달 뒤인 4월 2차 행정지도에 곧바로 나서 궁극적인 보안 강화 대책으로 모회사인 네이버와의 지분 정리(‘자본 관계 재검토’)까지 요구했습니다.

엄격한 보안 규제 강화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지분 매각까지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틱톡 매각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할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일본 요구대로 지분을 판다면 아시아권 라인 서비스의 주도권도 네이버는 잃을 우려가 큽니다. 플랫폼 하나를 만들고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일, 그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성공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감안하면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라인 지분 매입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낙후된 자국 IT산업을 일으킬 새로운 계기를 손쉽게 마련하게 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 네이버가 해외 주요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신속히 대응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표방하는 대통령, ‘기업과 시장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4월 16일 2차 행정지도 이후 한국 정부의 첫 입장이 나온 것은 11일 뒤인 4월 27일 외교부였습니다. 이후 5월 13일 대통령실 입장 발표까지 대부분이 ‘우리 기업에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이거나 ‘네이버의 진실하고 구체적 입장을 기대한다’는 식의 네이버를 향한 요구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 조치가 부당하다는 항의 표시는 없었습니다. 국민 여론이 들끓자 지난 14일에야 대통령실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떠한 차별적 조치나 기업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면밀하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힙니다.

필요하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가 부족해도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는 신냉전 프레임에 정상적인 국제 무역 질서가 흐트러지는 시대, 자국 기업의 재산권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한다면 국민들은 심각한 의문에 빠질 것입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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