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가 뭐길래…고성군, 800억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포기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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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해양수산부 공모사업 선정
발전소 온배수 수열에너지 재활용
산자부, REC 가중치 ‘1.5→0’ 개정
“경제성 없다” 남동발전·사업자 백기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포리 남동발전소 회처리장 부지에 조성할 예정이던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감도. 부산일보DB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포리 남동발전소 회처리장 부지에 조성할 예정이던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감도. 부산일보DB

경남 고성군이 정부 공모 사업으로 유치한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성이 착수 5년 만에 돌연 백지화됐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에 발목 잡힌 민간사업자가 끝내 백기를 들면서 800억 원 프로젝트가 한 순간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국비 준다니 일단 따내고 보자’는 묻지 마 공모의 민낯이 또 한 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고성군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최근 경남도와 군이 요청한 고성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조성 사업 포기 신청을 승인했다. 군은 “사업비 증가로 민간사업자가 먼저 사업 포기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전했다.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는 노동집약적인 양식 산업을 디지털화해 미래 식량 산업으로 전환할 거점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다. 고성군은 2019년 해수부 주관 공모 선정됐다. 대상지는 한국남동발전이 운영 중인 하이면 덕호리 삼천포발전본부 내 회처리장 부지 10만㎡. 이곳에 스마트양식 테스트베드와 대량 생산 시설, R&D·인력양성센터 등을 집적화하고, 해양 생태계 교란 주범으로 지목된 골칫덩이 발전소 온배수를 수열에너지로 재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총사업비는 400억 원(국비 220억 원, 도비 54억 원, 군비 66억 원, 민자 60억 원). 여기에 남동발전이 400억 원을 들여 온배수 공급 설비를 제공하기로 했다. 군은 이를 토대로 남동발전소 배후부지 64만㎡를 난대성 어류인 바리류 등 고부가가치 어종에 특화한 양식단지로 조성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계획대로라면 1780억 원의 생산 유발과 586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 1112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부족한 경제성 탓이다. 관건은 ‘REC 가중치’였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공급했음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발전사업자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데, 대부분 이를 지키지 못하는 처지라 REC를 구매해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남동발전 통큰 투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그런데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며 기존 ‘1.5’였던 수열에너지 REC 가중치를 아예 삭제해 버리면서 일이 꼬였다.

고성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위치도. 부산일보DB 고성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위치도. 부산일보DB

공모 당시 했던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던 남동발전은 우려가 현실이 되자 말을 바꿨다. 400억 원 규모 설비 제공은커녕 애초 인근 농지와 비슷하게 책정하기로 했던 부지사용료도 시세보다 높게 요구했다.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상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민간사업자는 고성군에 사업종료를 요청했다. 고성군은 뒤늦게 남동발전과 협의에 나섰지만 역부족. 결국 군도 경남도에 사업 포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군의회는 앞선 ‘에어돔 구장’ 사례를 곱씹으며 집행부의 주먹구구식 공모 참여가 또 하나 오점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에어돔은 공기압으로 실내 공간을 확보한 거대한 천막 구조물이다. 고성군은 2022년 스포츠마케팅 인프라 구축을 명분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공모에 참여해 선정됐지만 1년 만에 실익이 없다며 포기했다. 이번에도 남동발전 지원이 관건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작 남동발전과는 공문을 통한 사전 협의도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정영환 군의원은 “지금부터라도 공모 사업 추진 전 계획성은 물론 타당성과 운영 방안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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