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대신 내 방” 메이드인부산 다큐 '다섯 번째 방' 5일 개봉
부산 활동 전찬영 감독 메가폰
배급도 부산의 ‘씨네소파’ 맡아
자신만의 방 찾는 엄마 이야기
영화제 잇단 수상에 관심 집중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제공
시댁에서 살며 전업주부로 20년 넘게 가사 노동을 도맡아 온 ‘효정’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방을 갖는 게 소원인 사람이다. 가사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상담가의 꿈을 키운 그녀는, 최근 프리랜서 상담가로 활동하며 가족을 먹여 살린다. 하지만 온종일 일에 치이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반기는 것은 잔뜩 쌓인 설거지감이다. 본가에서 시댁으로, 작은 방에서 큰 방으로, 큰 방에서 다시 2층으로 이동한 효정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전찬영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은 가족을 위해 젊음을 바친 효정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엄마해방일지’다. 전 감독은 주방을 벗어나 내 방을 찾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일상 속 공간을 소재로 사회현상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 감독은 2018년부터 약 5년간 가족의 모습을 관찰해 영화로 제작했다. 가부장제 사회를 대변하는 아버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도, 스러져가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의 연출이 인상 깊다.
다큐 ‘다섯 번째 방’은 오는 5일부터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본격적인 개봉에 앞서 오는 4일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프리미어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GV) 행사가 진행된다. 관객과의 대화에는 전 감독과 그녀의 어머니 김효정 씨가 참석한다. 이번 작품은 2018년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제작 지원사업’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 유통배급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전 감독이 제작을, 부산지역 배급사인 씨네소파가 배급을 맡았다.
다큐 ‘다섯 번째 방’은 앞서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는 등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2022년 열린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심사단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열린 ‘제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시청자·관객상)와 ‘제5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장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상) 등에서 수상했다.
전 감독은 앞서 ‘바보아빠’(2012), ‘집 속의 집 속의 집’(2017) 등 가족을 소재로 한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그녀는 가족 이야기처럼 개인의 삶에서 출발해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장되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전 감독은 “상담사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엄마의 돌봄노동은 계속 이어졌고, 엄마의 고군분투를 보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마치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오랜 기간 촬영을 진행했다”고 제작 취지를 밝혔다.
이어 “이 이야기가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나 불편함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을 텐데 그런 엄마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며 “자녀들이 엄마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자유롭게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찬영 감독(왼쪽)과 어머니 김효정 씨의 모습.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제공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