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5년 현장 경험… 부산형 여성폭력 대응 체계 만들 것"
정경숙 이젠센터장
부산 여성폭력 종합지원기관
첫 현장 전문가 출신 센터장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 대한
성폭력 예방 체계 확립 주과제
“센터장으로선 병아리지만, 현장 전문가로선 베테랑입니다.”
지난 3일 오전 11시 30분께 부산시 여성폭력 방지 종합지원센터 ‘이젠센터’에서 만난 정경숙 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 5월 20일 부임한 정 센터장은 여성폭력 현장 전문가로서는 25년 차 베테랑이다.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여러 유형의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 첫 여성폭력 종합지원기관인 이젠센터를 현장 전문가 출신이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센터장이 주로 여성운동을 펼쳐온 무대는 성매매 집결지였다. 2002년 여성 인권 지원센터 ‘살림’ 설립을 주도하고 반성매매 운동에 주력했다. 2016년부터는 완월기록연구소장으로 완월동의 성착취 역사를 기록했다.
진보적 성격이 강한 여성운동 활동가 출신인데도 보수 색채가 짙은 부산에서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센터장으로 부임하게 돼 부담감과 책임감도 상당하다. 정 센터장은 “이젠센터는 여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는 기관인 만큼, 현장 전문가인 내가 밀착 지원했던 경험이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간 영역의 피해자 지원기관은 늘 신뢰 확보 문제와 함께 ‘무엇이든 뚫어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젠센터에서는 기관 간 연계를 바탕으로 한 여성폭력 예방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9월 개소한 이젠센터는 크게 젠더범죄 예방사업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구성돼 있다. 365일 24시간 원스톱 통합 지원을 원칙으로 삼고, 경찰관이 센터에 상주해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디지털 성범죄와 스토킹 범죄는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이젠센터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은 2023년 2956건이었고 올 6월 초까지 999건에 달했다. 올 5월 말까지 스토킹 피해자 주거 지원은 27건, 치료회복 지원은 51건에 달했다.
이젠센터의 주 과제는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 대한 성범죄 예방 체계 확립과 조직의 안정화다.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 대한 성범죄 예방 체계 확립은 이젠센터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하 직원에 대한 성폭력이 불거졌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태 등 공직 사회까지 퍼진 여성폭력이 센터 설립의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30인 미만 사업장은 고충처리위원을 둘 법적 의무가 없고, 10인 미만 사업장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교육자료나 홍보물 게시 등으로 갈음할 수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도 사실 확인 조사를 하지 않아도 사업주가 물어야 할 과태료는 500만 원에 불과하다.
정 센터장은 “피해자들은 사건 처리 절차 부재, 2차 피해 우려로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할 수 있다”며 “시 예산을 지원받는 시설을 대상으로 우선 조직문화 개선 컨설팅과 사건처리 지원단 파견을 홍보하고, 나아가서는 교육 이수 여부를 평가지표에 반영하는 식의 대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소 이후 센터장이 3번이나 바뀐 센터를 안정화시켜 본격적인 ‘부산형 여성폭력 대응 모델’을 구축해 나가는 것도 과제다. 정 센터장은 “부산이라고 해서 여성폭력의 형태가 타 지역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부산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수한 모델보다,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는 여성폭력 대응 체계를 갖춰 나갈 수 있도록 조직 안정화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