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복 입은 예수
예수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예수.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은 ‘예수의 생애’ 연작(1952~1953)에서 이렇게 그렸다. 운보는 예수를 한복 입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신약성서의 무대를 한국의 산천으로 표현했다. 예수와 주변 인물을 한복 차림의 한국인으로 그린 그의 새로운 시도는 당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 속 한복을 입은 예수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그리스도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게 한복의 힘이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1994년 파리에서 네 번째 한복 패션쇼를 열었을 때다. 프랑스 언론은 한복을 두고 ‘바람의 옷’이라 했다. 바람결 따라 자유자재로 그 자태를 뽐내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파리와 더불어 세계가 매료됐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그룹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을 무대 의상으로 입어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다. 한복이 인기를 끌자,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자기들 옷이라며 억지 주장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복이 우리의 옷이란 건 자명했다. 2021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콜린스 사전에 등재된 ‘hanbok’은 다 같이 ‘A traditional Korean dress’(전통적인 한국의 옷)로 설명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옷이 바로 한복이다.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높다. 한복을 입은 이방인들이 경복궁을 거니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최근 한복이 우리 고유의 복식임을 세계에 알리는 행사가 브라질에서 펼쳐졌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이 이미지를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 기법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었다. 리우 예수상이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예수상은 가로 30m, 높이 38m로 해발 710m 높이의 코르코바도 언덕 정상에 서 있다. 이곳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한복이 우리 고유의 옷임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두 팔 벌린 늠름한 예수의 모습. 여기에 어울리는 푸른색 한복. 이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있을까. 한복 입은 예수를 계기로 한국 전통문화의 확장과 함께 세계인의 가슴에 한복의 아름다움과 고유성이 오래도록 기억됐으면 한다. 더불어 한복이 전 세계에 통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길….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