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할 수 있어!” 응원으로 완성한 2박 3일의 ‘도전’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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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발달장애인 일본 단체 여행
늘빛교회 도움 받아 130명 동행
무더위 등 어려움 속 값진 경험
“장애인 여행권 민관 지원 필요”

지난 12일 부산 사상·남·부산진·사하구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성인 발달장애인 71명이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김해공항에 모였다.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등까지 합쳐서 130명이 함께했다. 사상구장애인복지관 제공 지난 12일 부산 사상·남·부산진·사하구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성인 발달장애인 71명이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김해공항에 모였다.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등까지 합쳐서 130명이 함께했다. 사상구장애인복지관 제공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이들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되뇌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30분께 김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발달장애인들이 있었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발달장애인은 비행기 엔진소리와 소음 등 변화에 쉽게 혼란을 겪는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격려였다.

부산 사상·남·부산진·사하구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성인 발달장애인 71명이 늘빛교회 도움으로 일본 오사카 여행을 떠났다.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등까지 합치면 13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일행이 김해공항에 모였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복지관별로 맞춰 입은 옷으로 단장한 이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상구장애인복지관 정화주 관장은 “이렇게 많은 발달장애인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건 전국에서 처음”이라며 “비장애 청년들의 전유물이었던 해외여행 경험을 장애 청년들에게도 제공하자는 의미로 여행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여행 일정은 2박 3일. 비장애인들에겐 다소 짧아도 이들에겐 도전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복잡한 수속 절차를 마치고 나자 이들 앞엔 좁은 비행기 통로가 나타났다. 일행의 착석이 늦어지자 “현재 기내 통로가 정체돼 진입이 어렵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발달장애인 일행의 어려움을 모르는 일부 손님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일부 발달장애인과 담당 복지사는 나란히 앉지 못한 채 일본으로 향했다.

이들이 마주한 일본의 번화가는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오사카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인 도톤보리는 발달장애인에게 낯선 시청각 자극들로 가득했다. 서로 손을 잡은 이들은 주어진 자유시간 1시간을 무사히 마친 뒤 도톤보리 중심에 다같이 안전하게 모였다. 딸의 손을 잡고 일본 번화가를 걷는 한 어머니 얼굴에선 뿌듯한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김경희(63) 씨는 “딸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얼마를 내도 경험하지 못할 값진 일”이라며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공감할 수 있어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감격했다.

일본 열도를 덮친 더위도 이들의 동행을 막을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들은 손을 꼭 잡은 채 서로를 챙기고 땀을 닦아주며 여행을 계속했다. 이도영(40) 씨는 사람이 많은 관광지에서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멈추곤 했다. 이 씨는 “다른 친구들이 잘 오고 있는지 궁금해 계속 돌아봤다”고 답했다. 그는 관광지 이름과 특산물을 암기하기도 했다. 이 씨는 “한국에 있는 아빠에게 말해주고 집 갈 때 선물을 사 가려 한다”고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사흘간 나라 공원, 도톤보리, 오사카성 등을 둘러보고 샤부샤부, 야키니쿠 등 다양한 일본 음식으로 맛봤다. 어려움도 있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낯선 환경에 놀란 몸이 발작을 일으키거나 눈이 아파 급히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체력이 약한 발달장애인들은 힘에 부쳐 여행 코스를 완주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은 그때마다 “괜찮다,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양강장제 삼아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번 여행은 이들에게 도전과 성취의 기억으로 남았다. 남구장애인복지관 유경상 관장은 “불편한 이들이 보호를 이유로 방 안에 갇히게 되면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며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같은 여행권을 누리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민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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