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볼프강 연주에 놀란 대주교 “넌 영원한 잘츠부르크의 보석” [세상에이런여행] ㉑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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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in오스트리아 ③ 잘츠부르크(중)>

‘음악 신동’ 소문 잘츠부르크 곳곳 퍼져
다섯 살 모차르트 미라벨 궁전 초청받아
최고 지도자 앞에서 감동적인 연주 진행

‘그랜드투어’ 앞두고 레지덴츠서 음악회
참석한 신부·귀족·관리, 우레 같은 박수
오페라 부파 ‘어리석은 아가씨’ 등 초연

10대 성장하자 마카르트 광장 인근 이사
바이올린 협주곡 3번 등 많은 작품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게트라이데가세와 유아세례를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나와 레지덴츠 광장을 거쳐 모차르트 광장을 지난다.

모차르트 광장에는 모차르트가 죽고 50여 년 후인 1842년에 제막된 모차르트 동상이 있다. 남편 사후에 재혼한 부인 콘스탄체는 동상이 만들어질 때 잘츠부르크로 이사를 갔지만 제막식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완성된 옛 남편의 새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모차르트의 두 아들 카를 토마스, 프란츠 자베르 볼프강이 행사에 참석했다. 프란츠 자베르는 아버지를 기리면서 직접 작곡한 칸타타를 연주했다.

모차르트 광장의 모차르트 동상.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 광장의 모차르트 동상.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 동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잘자크강으로 나가 다리를 건넌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도 나오는 ‘모차르트다리’다. 대부분 이 다리의 이름은 물론 영화 이야기도 몰라 굳이 찾아가지 않는다.

잘자크강에서는 유람선이 한가롭게 돌아다닌다. 강변에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마련돼 자전거 동호인들이 신나게 속도를 즐긴다. 보행자가 전용도로에서 얼쩡거리면 “비켜”라는 호통이 터져 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다리를 따라 죽 걷다보면 마카르트 다리 앞에 세계적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태어난 생가가 나타나고, 이어 잘츠부르크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미라벨 궁전과 정원이 나온다. 궁전을 찾아온 것은 모차르트가 ‘음악신동’이라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잘자크강 전경. 남태우 기자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잘자크강 전경. 남태우 기자

■미라벨 정원

당시 귀족이나 부자 집안에서는 아들, 딸 할 것 없이 음악을 가르쳤다. 유명 음악가를 초청해 저녁마다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게트라이데가세는 지금은 쇼핑거리에 불과하지만 부자, 귀족이 많이 살았던 당시에는 하루 종일 클래식 음악 연주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거리였다. 특히 모차르트의 집에서는 궁정 악사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이 밤마다 수준 높은 음악을 연주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모차르트는 출생 직후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던 누나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악기 다루는 법을 익혔다. 원래 음악에 소질을 타고난 데다 어릴 때부터 매일 음악만 듣고 살았으니 천부적 재능이 일찍 폭발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라벨 궁전과 정원 전경. 남태우 기자 미라벨 궁전과 정원 전경. 남태우 기자

레오폴트가 아들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한 것은 세 살 때라고 한다. 그는 게트라이데가세의 집에 친구를 초대해 모차르트와 난네를의 음악 연주를 들려주었고, 어린 아들이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남매의 연주를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매, 특히 모차르트가 ‘음악의 신동’이라는 소문은 금세 잘츠부르크에 퍼졌다. 귀족이나 부자가 모차르트 가족을 저녁에 집으로 초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어린 아이가 ‘음악 신동’으로 알려지자 당시 잘츠부르크의 정치, 종교 지도자이던 지기스문트 폰 슈라텐바흐 대주교·대공도 호기심이 동해 모차르트를 미라벨 궁전으로 불렀다. 대주교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음악을 좋아했고, 지식이 풍부해 음악을 듣고 구분할 줄 아는 귀도 갖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는 대주교가 두 명이다. 동부를 담당하는 한 명은 빈에, 서부를 책임지는 다른 한 명은 잘츠부르크에 교구를 두고 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도시의 정치적 지도자인 대공을 겸임했다.

다섯 살이었던 모차르트는 미라벨 궁전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대주교는 혼자서 옷도 제대로 못 입는 ‘꼬마’가 연주하는 음악에 얼마나 감동했던지 눈물을 글썽이며 감탄했다.

“너는 영원히 빛나는 잘츠부르크의 보석이 될 거야.”

미라벨 궁전 ‘대리석의 홀’. 남태우 기자 미라벨 궁전 ‘대리석의 홀’. 남태우 기자

슈라텐바흐는 이후 모차르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대음악가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모차르트가 대주교를 위해 처음 음악을 연주한 곳은 미라벨 궁전 ‘대리석의 홀’이었다. 매우 값비싼 대리석과 화려한 예술품으로 장식된 방이었다. 모차르트는 이후에도 대주교의 요청이 올 때마다 대리석의 홀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지금도 대리석의 홀에서는 모차르트 음악을 주제로 연주회가 열린다.

미라벨 정원은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서 주인공들이 ‘도레미송’ 등을 부른 곳으로 유명한데, 모차르트가 산책을 자주 즐기던 곳이기도 했다. 그는 일요일이 되면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뒤 집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볼츨쉬센이라는 놀이를 즐겼다. 게임을 마친 뒤에는 꼭 미라벨 정원으로 산책을 갔다.

미라벨 궁전을 처음 만든 사람은 16세기 말~17세기 초 대주교·대공이었던 볼프 디트리히 라이테나우였다. 결혼을 할 수 없는 사제 신분이었던 그는 1592년 시의원의 딸이었던 살로메 알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 열다섯 명을 낳기도 했다. 볼프 디트리히는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지자 살로메가 편히 지낼 수 있게 하려고 잘자크강 인근에 미라벨 궁전을 지어주었다.

라이테나우의 후임 대주교였던 파리스 폰 로드론은 미라벨 궁전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궁전을 더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정원을 확장했고 궁전 별채도 새로 지었다. ‘사운드오브뮤직’에 등장하는 미라벨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때 완성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라벨 궁전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 성 일대. 남태우 기자 미라벨 궁전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 성 일대. 남태우 기자

미라벨 정원은 연중 어느 때 가더라도 아름답다. 그래도 가장 훌륭한 풍광을 눈에 담으려면 봄이나 여름에 가는 게 최고다. 정원에 피어난 각양각색의 꽃과 푸른 잎은 세상을 환상적으로 만든다. 가장 풍광이 뛰어난 포인트는 정원의 가장 높은 곳인 미라벨 궁전 앞이다. 여기에서는 정원은 물론 멀리 호엔잘츠부르크성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미라벨 궁전을 둘러본 뒤 인근 마카르트 광장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모차르트 가족이 게트라이데가세에서 이사를 가서 10년 이상 살았던 ‘모차르트하우스’가 있다. 그들이 이사를 간 것은 모차르트와 난네를이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바람에 방을 따로 줘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1773년부터 빈으로 떠났던 1781년까지 8년간 살면서 피아노협주곡 5~10번, 바이올린 소나타 26번, 바이올린 협주곡 3~4번 같은 훌륭한 곡을 수없이 작곡했다.

모차르트하우스도 모차르트 생가처럼 모차르테움재단이 관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보험사 소유 건물이었는데 재단에서 사들여 건물을 부수고 옛날 모양대로 새로 지었다. 2년 뒤에는 새 저택을 박물관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지금 이곳의 일부 공간은 콘서트 홀로 이용되며, 모차르트가 살았을 때 사용했던 각종 악기와 여러 가지 서류 등이 전시돼 있다.

모차르트가 1773~1781년에 살았던 집.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가 1773~1781년에 살았던 집. 남태우 기자

■레지덴츠

아직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 소년이던 시절 모차르트의 연주 활동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다시 잘츠부르크 대성당 쪽으로 돌아간다. 대성당 바로 앞에는 역대 대주교·대공이 살았던 궁전인 레지덴츠가 있다. 각종 방과 홀이 무려 180개에 이르는 대형 저택인 레지덴츠는 화려하다.

유럽 다른 도시의 궁전처럼 레지덴츠에는 그림이 매우 많다. 액자에 담은 별개의 작품은 물론 벽화, 천장화에 이르기까지 그림 종류는 다양하다. 상당수는 1710~1714년 사이 오스트리아 화가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어와 이탈리아 화가 마르티노 알토몬테가 그렸다.

레지덴츠의 벽화, 천장화에는 특징이 있는데, 한 인물의 인생을 시리즈로 담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BC 4세기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다. 대표적인 곳은 리저탈, 즉 ‘기사의 방’ 천장화다. 여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애마 부케팔로스를 아버지에게 자랑하는 장면 등이 그려졌다.

레지덴츠 천장화에 담긴 알렉산더 대왕. 남태우 기자 레지덴츠 천장화에 담긴 알렉산더 대왕. 남태우 기자

미라벨 궁전에 갔다가 다시 잘자크강을 건너 레지덴츠에 온 것은 모차르트가 대주교·대공 처소인 이곳에서도 수시로 음악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주교·대공을 위해 최초로 연주회를 연 것은 일곱 살 생일이 한 달 지난 1763년 2월 28일이었다. 바이에른 공국~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 여행을 한 이른바 ‘그랜드투어’를 떠나기 다섯 달 전이었다. ‘기사의 방’에서 열린 이날 연주회에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많은 신부, 귀족, 고위 관리가 참석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은 불문가지다.

모차르트는 열한 살인 1767년 3월에 오라토리오 ‘첫 계명의 의무’를 역시 ‘기사의 방’에서 초연했다. 이 곡은 사실상 모차르트의 첫 오페라였는데, 다른 곳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1769년에는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 ‘어리석은 아가씨’를 초연했다. 이 작품은 원래 빈에서 공연하려고 만들어졌지만 ‘열세 살 꼬마가 만든 작품을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빈 음악계의 반대 때문에 공연되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 처박혀 있었는데 대주교·대공 슈라텐바흐가 공연을 주선한 덕에 무대에 올랐다.

레지덴츠 ‘기사의 방’ 전경 남태우 기자 레지덴츠 ‘기사의 방’ 전경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는 1775년 4월에는 막시밀리안 프란츠 대공의 잘츠부르크 방문을 환영하는 뜻에서 오페라 ‘양치기 왕 K208’을 작곡해 초연했다.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아들인 막시밀리안은 동갑내기인 모차르트를 매우 좋아했다. 모차르트가 선택한 대본 주인공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대왕이 시돈의 왕 자리를 물려주는 과정을 묘사한 오페라였다.

연간 방문객이 15만~20만 명 정도인 레지덴츠는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일부 공간은 박물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잘츠부르크 대학교 강의실로 사용되는 공간도 있다.

모차르트가 음악을 연주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 연주회도 수시로 열린다. 그가 레지덴츠에서 맹활약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관광객은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 연주를 들어본 사람 중에서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연주자가 모차르트가 아니라는 점을 아쉬워할 뿐이다. 모든 사람의 머리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다섯 살 때 모차르트의 연주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레지덴츠. 남태우 기자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레지덴츠. 남태우 기자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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