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땜질식 부실 처방에 여전히 우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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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 인정돼도 구제는 '막막'
특별법·지자체 지원 실효성 살려야

부산의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가 지난달 30일 기준 1997명에 이르고 피해 금액은 무려 2015억 39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주로 청년층인 보증금 피해자는 지난달 19일 1982명에서 매일 1명 이상 늘어나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은 전 재산을 날리거나,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문제는 부산시로부터 ‘사기 피해 인정’을 받아도 실효성 있는 구제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산시의 지원책뿐만 아니라 전세사기특별법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환대출이 최대 1년까지만 연장이 돼서 이후는 1억 원 대출금 이자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 창구에서 ‘대상자가 많다’는 이유로 대환대출을 거절당하거나 다가구, 불법건축물은 아예 제외돼 사각지대 논란도 인다. 민사소송 지원도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건물주 구속으로 소 제기의 실효가 없거나 소송 비용이 지원금을 상회해서다. 사기를 당해 막막한 상황에서 건물의 전기·수도료, 관리비까지 떠안아야 되는 이중고를 겪는 사례도 많다. 부산시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의 법률적 조력에 실효성이 없다는 불만도 꾸준히 제기된다. 전세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셈이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지만 여태껏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는 것은 부실 처방에 급급한 정부와 정치권 탓이다. 21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선구제 후회수’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정부는 경매로 매입하고 남은 차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고, 주택 매입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을 검토 중이지만 여야가 격돌하는 22대 국회 문턱을 언제 넘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나락에 떨어진 피해자들은 보증금 회수와 주거 불안 해소만 오매불망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언제까지 정쟁만 이어가고 있을 텐가. 전세사기특별법은 당장 개정돼야 한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전세사기 일당은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해 다세대 주택에 주로 거주하는 사회 초년생과 서민층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그런데 특별법의 ‘경매 1년 유예’ 조항은 현실에서 무시되기 십상이고, LH가 경매로 낙찰받아 피해자에 임대한 사례는 특별법 시행 1년간 고작 5건에 불과했다. 이 대목에서 부산시의 적극적인 역할이 주문된다. 정부 정책의 빈틈을 피해 현장의 지자체가 메우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부산시는 피해자들이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유형별 구제책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빼앗긴 미래’의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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