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보들의 행진' 소리 듣는 정쟁, 민생은 언제 챙기나
‘방송 4법’ 소모적인 정쟁만 무한 반복
민생 법안에 목마른 국민들 인내 한계
국민의힘이 야권의 ‘방송 4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로 국회가 날을 새고 있다. 법안은 각각 KBS, MBC, EBS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것인데 여야가 서로 방송 장악 논리를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법안 상정→필리버스터→24시간 후 야당의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법안 단독 처리’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 이후에도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가 예고돼 있어 소모적인 정쟁만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국회 내부에서도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등장했다.
‘방송 4법’은 방송통신위원회 구성과 의결을 규정한 방통위법과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규정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법 등 ‘방송 3법’을 말한다. 이 법안들의 근본 취지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방통위를 통한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방통위의 의결정족수를 4인으로 늘리고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여당은 ‘야 편향 방송을 만들려는 속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정성이 정권 부침에 따라 여야가 입장을 달리하며 정쟁의 소재만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국회에서의 ‘방송 4법’ 개정 논의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방송 4법’ 중 방통위법 개정안이 필리버스터와 강제 종료를 거쳐 야당 단독 처리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교육방송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와 토론 종결이 완료되는 30일 이후면 모두 표결이 완료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 폐기 수순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21대 국회에서 ‘방송 3법’ 개정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공영방송 독립을 항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숙의 절차는 온데간데없고 여야 간 정쟁만 반복되는 것이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국민의힘)은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따가운 눈총에도 여야는 아랑곳없다.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까지 여야 간 강 대 강 무한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방송 4법’에 이어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당론 법안인 이른바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과 ‘노란 봉투법’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서도 야당의 법안 강행과 여당의 필리버스터, 야당 단독 처리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 등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와중에도 국회는 민생 법안 처리에는 뒷전이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현안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외침도 외면하고 있다. 소모적인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내도 한계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