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 권도형, 미국 아닌 한국 재판대 오른다
몬테네그로 법원 1심 판결 확정
법무부 장관 교체로 상황 급변
한국 경제사범 최고형량 ‘40년’
미국 ‘100년’ 이상 징역형 가능
변수 없다면 조만간 한국 송환 진행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 핵심 인물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가 미국이 아닌 한국의 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1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권 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항소법원은 판결문에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에 대해 한국으로의 약식 인도를 허용한 반면,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했다”며 “이러한 결정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1심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보다 순서상 먼저 도착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따라서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1심 판결은 그 이유가 명확하고 충분하며 2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그간 사법부는 법률에 따라 권 씨를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부 장관은 대미 관계를 의식해 미국행으로 무게를 뒀다. 밀로비치 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권 씨 인도국에 대해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정부의 부분 개각을 통해 밀로비치 장관이 교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항소법원이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확정한 상황에서 후임 법무부 장관이 법원의 판결을 다시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권 씨 현지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도 그동안 법원에 한국 송환을 줄곧 요구해 왔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최고 형량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650억 달러(한화 약 86조 원) 규모의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주도해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 사기범으로 꼽히는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역시 달러와 연동해 안전한 ‘스테이블 코인’으로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던 테라의 실체가 폰지 사기로 드러났다. 당시 전 세계 투자자의 피해 규모는 400억 달러(약 5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로써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의 판결로 권 씨는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검거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한국과 미국 중 한국으로 송환될 전망이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권 씨는 조만간 한국 송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권씨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에 입국 후 지난해 3월 23일 현지 공항에서 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위조 여권이 발각됐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권 씨는 지난 3월 2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현지 외국인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