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제복지원 잇단 국가배상 판결 항소는 책임 회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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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책임 인정한 판결에도 불복
피해자들에게 두 번 상처 주는 셈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배소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배소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에 대해 정부가 항소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는 오는 22일 형제복지원 사건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항소심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월 형제복지원 피해자 1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들에게 총 45억 3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처럼 사법부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한 것인데도 정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것이다. 피해자에게 사죄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정부의 항소는 피해자와 가족을 두 번 상처 입히는 거나 다름없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0~1980년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건이다. 1975~1986년 3만 8000여 명이 수용됐으며,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도 과거 이를 묵인한 정부와 관계 기관이 책임감을 갖고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불복해 판결에 항소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국가의 항소는 피해자들을 또다시 몇 개월간 국가를 상대로 힘들게 싸워야 하는 상황으로 내모는 것으로 2차 가해라 할 수 있다. 인권 유린으로 고통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여전히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여러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다른 사건들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항소했다고 얘기하지만,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 배상소송은 현재 총 34건에 달한다. 자칫 항소는 국가 권력의 오남용으로 비칠 수도 있다. 국가 기관이 합리적 판단을 했는지, 국가가 나서서 항소할 상황인지도 의심이 든다. 오히려 국가는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피해자 명예 회복과 배상을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수용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며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법원의 잇단 국가배상 판결은 이와 일치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과 법원 판결까지 나온 판국에 정부가 사과는 못 할망정 항소를 고수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가혹행위다. 국가가 법원의 배상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두고 두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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