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안한 전기차 지하주차장 화재, 예방책 재설계해야
법적 대비책 사실상 전무, 재발 위험 상존
안전설비 법제화 등 정부·정치권 나서야
지난 2일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년간 부산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한 화재 발생 건수가 60건이 넘는다고 한다. 고작 60여 건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한 번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불과 수초 만에 온도가 1000도 이상 치솟는다. 좀체 꺼지지도 않는다. 그 무서움은 올해 6월 2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화성시 배터리 공장 화재에서 똑똑히 목도한 바다. 이런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요 사용처가 전기차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화약고나 다름없을 전기차인데, 그에 대한 예방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인한 피해는 말 그대로 재난 수준이었다. 주변 차량 140여 대가 불타고 주민 120여 명이 대피했다. 그 여파로 아파트 전체 전기와 수도가 끊겨 주민들이 때아닌 난민 신세가 됐다.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도 열폭주였지만, 거기에 지하주차장 내부까지 소방장비가 제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점이 피해를 키웠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해당 전기차에 별다른 충격 없이 주차 중인 상태에서 불이 났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번 인천에서의 사고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전기차 화재가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와 함께 그런 재난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여실히 확인해 줬다고 하겠다.
이런 현실임에도 현재 지하주차장 등에서의 전기차 화재를 예방할 법적 대비책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아파트에서의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만 의무화했을 뿐, 지하주차장에서의 전기차 주차나 충전시설에 대한 안전기준이나 규제가 없는 것이다. 소방 당국이 안전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전용 화재 진압 장치를 명시하고는 있지만 권고 사항에 그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의 전기차 주차시설의 지상 설치 권고 역시 유휴 공간 부족을 염려하는 입주민들의 반대로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 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파트를 비롯한 다중이용시설 지하주차장에서의 전기차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난해에만 10건이 발생했다. 전기차 보급이 확산하면서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안전 대책을 총체적으로 다시 짜야 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향후 전기차 주차장 지상 설치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지하주차장 안전 설비를 법제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국회에서 ‘전기차 충전기 소방시설 의무화법’이 발의됐으니 원만히 통과되도록 정치권의 노력이 요구된다. 배터리에 대한 인증체계 확립 등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시도 미뤄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