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 초집중 심화해 지방소멸 부추길 부동산대책
그린벨트 해제하고, 42만 7000호 공급
저출생·인구 감소 오히려 조장하는 꼴
정부는 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총 8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신규 택지 후보지를 오는 11월부터 발표한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개발제한구역 일대. 연합뉴스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서울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풀어서 아파트를 대거 짓는 등 6년간 42만 7000호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8·8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를 해제해 선호도가 높은 입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 8만 호를 공급하는 계획도 포함했다. 6년 임대 후 분양전환 가능한 신축 매입 주택 도입도 수도권만 대상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 급팽창으로 인한 지방소멸 가속화가 우려된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그린벨트를 풀어 주변 시세의 70%로 공급하면서 ‘로또 아파트’ 열풍이 불었던 상황이 재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의 이번 서울 등 수도권 주택공급 대책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 등 아파트 가격이 20주 연속으로 오르는 등 불안심리가 확대되자 이를 잠재우려는 차원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진현환 1차관이 최근 주택공급 대책을 마련하면서 박상우 장관으로부터 “넘치도록 주택공급을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서울 그린벨트까지 풀면서 수도권에 부동산을 대거 공급하는 대책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만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권에 GTX 6개 노선 발표에 이어 대규모 주택공급까지 이뤄지면, 인구와 기업이 블랙홀처럼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비수도권과의 주택 가격 양극화도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출생률 저하와 인구 감소다. 수도권 집중과 출생률 저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은행조차 “수도권 집중 완화가 출생률을 높인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경쟁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면서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고, 국토의 11.8%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서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결혼·출산마저 버거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수도권 인구는 50.7%를 넘어섰고, 소득과 일자리는 88%나 몰려 있다. 8·8 부동산대책으로 서울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건설하면, ‘수도권 인구 증가→지방 인구 이탈→수도권 교통난·주택난 심화→교통망과 주택 공급 확대→또다시 수도권 초집중’이라는 악순환만 심화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입으로만 외칠 뿐,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수도권의 기형적 확장’으로 지방소멸을 재촉하는 정부의 ‘지방시대’ 구호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과 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이전은 하세월이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수도권에만 몰리면서 지방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참에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본심이 ‘국가균형발전’인지, ‘수도권 일극체제’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지방소멸을 자초하는 모순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