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뿔난 농심… 자식 같은 벼 갈아엎었다
작년 수확기 대비 12% 하락
전농 부경연맹 의령군서 시위
3800㎡ 규모 논 트랙터로 밀어
정부에 생존권 대책 마련 촉구
쌀값 폭락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2022년 역대 최악의 쌀값 폭락에 이어 올해 다시 곤두박질치는 쌀값을 잡기 위해 ‘논 갈아엎기’에 나선 것이다. 농민들은 생존권이 걸린 쌀값을 보장해야 한다며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은 지난 9일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3800㎡(약 1150평) 규모 논에서 푸릇푸릇한 벼를 갈아엎었다. 트랙터 2대가 공들여 길러온 벼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아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안팎이었다.
논 주인 이현수(54) 씨는 “이 더운 날 숨도 못 쉴 정도로 고통받으면서 자식처럼 피땀 흘려 키운 농작물인데, 갈아버리는 심정은 차마 말로 다 못 한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 옆으로 얼굴이 검게 그을린 농민 50여 명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불볕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윤석열 내리고 쌀값 올리자’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20kg당 4만 4619원이었다. 이를 한 가마니(80kg)로 단순 계산하면 17만 8476원이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 시 1만 3368원, 약 7%가 떨어진 셈이다. 지난해 수확기(10~12월) 평균 산지 쌀값 20만 2797원에 비해선 12% 낮은 수준이다. 농민들은 인건비·재룟값 등은 오르는데 쌀값은 제자리라 이대로 두면 수확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하는 꼴이 될 것이라 하소연한다.
올해 쌀값 하락은 2022년과 비슷한 흐름이다. 6월 쌀값이 전년도 11월에 비해 5% 이상 하락한 게 2022년과 올해뿐이기 때문이다. 전농 부경연맹 측은 “윤석열 정권은 작년 양곡관리법 개정은 포퓰리즘이라서 거부하고, 수급 조절로 쌀값 20만 원을 보장한다고 호언장담했다”며 “하지만 그 결과는 쌀값 대폭락으로 귀결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쌀값 폭락이 지난해 생산된 쌀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난달 집계한 농협,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CP) 등 쌀 재고량은 51만 1000t에 이른다. 전년도 대비 23만t(80.7%), 평년 대비 16만 7000t(48%)이 늘어난 수치다.
일반 시민들도 쌀값 하락을 체감할 정도다. 하나로마트 창원점 쌀 소비 촉진 행사장에서 만난 70대 구 모 씨는 “얼마 전까지 20kg에 6만 원 정도 했던 거 같은데, 가격이 이렇게 떨어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내와 장을 보러 온 김종효(36) 씨는 “2인 가구인 데다 다른 음식도 즐겨 쌀을 많이 먹진 않지만, 살 때마다 가격이 다른 것 같다. 오늘은 조금 더 저렴해 보인다”고 했다.
정부에선 수요가 줄고 재고로 남는 쌀을 저가로 판매하게 되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게 쌀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작년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6.4kg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30년 전 1인당 소비량(110.2kg)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다. 수입쌀은 가공·주정 등에 사용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농식품부는 공공미 비축을 위해 지난해 생산된 쌀 40만t을 사들인 데 이어 해외 원조 물량 10만t을 수매했다. 또 지난 6월 민당정 협의회에서 결정한 쌀 5만t을 추가로 매입해 쌀값을 방어한다는 계획이다. 농협중앙회에서도 1000억 원을 들여 ‘쌀 소비 촉진 운동’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 매입과 농협 대책 추진 상황에 따른 산지 쌀값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추가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강대한 기자 kdh@busan.com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