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날자 전기 떨어진다’ 여름철 조류 정전 피해 곤혹
19일 남부경찰서 2시간 동안 정전
여름철 전신주 주변 활동 개체 증가
도심 속 총기 활용 포획, 사고 위험
음식물 등 먹이원 차단 노력 필요
여름철 도심 속 전신주 주변에서 활동하는 까마귀가 늘면서 정전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울산 태화강 인근 전신주에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전선 위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까마귀 탓에 정전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까마귀가 경찰서의 전력 공급마저 끊었다. 도시 치안을 담당하는 인프라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총을 쏴 물리적으로 포획할 수 없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까마귀의 먹이원을 차단해야 하며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1일 한국전력 부산울산본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6시 30분께 부산 남구 대연동 남부경찰서 일대에 정전이 발생했다. 확인 결과 정전은 까마귀가 남부경찰서 인근 전선과 충돌한 탓에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빚어졌다.
이 사고로 남부경찰서와 인근 600세대 규모 아파트에 전력 공급이 2시간 가량 중단됐다. 남부경찰서는 비상 발전기를 통해 업무에 큰 지장을 받지 않았으나 무더위 찜통에 에어컨 없이 업무를 봐야 했다. 정전은 오전 8시 30분께 한전이 전선을 긴급 복구해 마무리됐다.
까마귀로 인한 정전 사태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한전의 집계에 따르면 전국 까마귀 정전 피해는 △2021년 21건 △2022년 47건 △2023년 35건 발생했다. 지난 6월에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 일대에서는 까마귀가 전선을 접촉해서 492가구와 인근 중학교 등에서 정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도심에서 발견되는 까마귀는 주로 ‘큰부리까마귀’라 불리는 개체다. 큰부리까마귀는 나무 꼭대기 등 높은 곳을 선호하는 습성을 지녔는데, 도심에서는 전신주가 나무 역할이다. 전신주 위에 둥지를 만드는 등 전신주 자체가 활동 영역의 기준점이 돼 전선 접촉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6월~8월은 새끼 까마귀가 둥지를 떠나는 ‘이소 시기’인데, 이맘때 전신주 주위로 활동하는 개체 수도 덩달아 증가하면서 정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전 주범으로 지목되는 까마귀지만 물리적 포획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영도구를 제외한 부산 15개 구·군이 엽사로 이뤄진 기동포획단을 운용 중이지만 인명 피해 등을 이유로 도심에서 까마귀를 향해 총을 쏘기는 어렵다.
실제 올해 상반기 까마귀, 까치 포획 실적은 까마귀 8마리, 까치 19마리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항이 있고, 다른 기초 지자체와 비교해 논밭 면적이 넓은 강서구에서만 포획 활동이 이뤄졌다.
한 기초 지자체 기동포획단 담당자는 “하늘에 있는 까마귀를 총으로 쏘다가 떨어지는 총알 때문에 자칫 사람이 다칠 수 있다”며 “한전 측에 연락해서 전신주 위에 둥지를 제거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까마귀가 이미 자연을 떠나 도심 생태계에 편입된 만큼 먹이원을 차단하는 방식 등으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이원호 조류 박사는 “까마귀는 7세 지능으로 영리한데다 기억력도 좋아 포획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까마귀는 먹이가 없는 곳에는 머무르지 않는다”며 “음식물 쓰레기통은 부리로 열 수 있는 일반 플라스틱 소재에서 철재로 바꾸고 종량제 봉투 또한 헤집을 수 없도록 일본처럼 그물망 등을 설치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