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님들이 일본산 수산물 알면서도 신경 안 써요”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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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원전 오염수 방류 시작 1년 수산물 1번지 자갈치 가 보니

기피 분위기 없이 인기리 성업
일본산 가리비 알고도 사 먹어
정부 5만 건 검사 결과 ‘이상 무’
전문가들, 대응 체계 강화 주문
“안정기 판단 성급… 긴장 필요
이력제 확대 등 신뢰 확보해야”

21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2층에 있는 일명 ‘초장집’에서 관광객들이 식사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21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2층에 있는 일명 ‘초장집’에서 관광객들이 식사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21일 낮 12시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정문에는 ‘매일 수족관 내 해수 수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해수 수질 측정기가 설치돼 있었다. 한 상인이 장어 머리를 잡아채 능숙하게 손질을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외국인 손님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가 오는 날임에도 좁은 시장 복도에 방문객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등 ‘수산 1번지’의 명성은 그대로였다.

■“손님이 일본산 더 잘 알아”

이날 자갈치시장에서는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공포는 느낄 수 없었다. 가게마다 설치된 안내판에는 수산물 품종별 원산지가 쓰여 있었고, 방문객 중 원산지를 상인에게 재차 묻거나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국내 수입되는 일본산은 주로 가리비나 돌돔이다.

자갈치시장 375번 ‘해왕상회’ 이기재(57) 대표는 “지난해 오염수 방류 전후로 일부 상인과 손님들이 동요했지만, 차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면서 “요즘은 손님이 더 원산지에 대해 잘 알아, 오히려 ‘가리비는 일본산 맞죠’라며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남편과 함께 자갈치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신 모(56·부산 부산진구) 씨는 “원래 수산물을 좋아하는데 지난해 오염수 방류 때 너무 논란이 되는 것 같길래 잠시 발길을 끊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문제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점심시간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 상인회인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김재석 조합장은 “정부의 방사능 검사로 인해 수산물 안전 우려가 해소되고, 온누리상품권 환급 등 판촉 행사도 자주 열리면서 소비 위축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5만 건 방사능 검사 ‘이상 무’

정부는 지난해 오염수 첫 방류 때부터 이달 19일까지 총 4만 9633건의 방사능 검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내 해역, 수산물, 선박 평형수(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는 물) 등을 대상으로 검사했지만 방사능 안전 기준을 벗어나는 사례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무조정실 김종문 국무1차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최근 수산물 소비 급감이나 사재기 등 현상도 없었다”고 전했다.

일본은 지난해 8월 24일 첫 오염수 방류를 시작으로 지난달 16일 7차 방류를 마쳤다. 8차 방류는 지난 7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진행 중이며, 이를 합치면 총 누적 오염수 방류량은 6만 2400t에 이른다. 후쿠시마 원전에 보관된 약 125만t의 오염수를 모두 흘려보내려면 향후 30~4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진도 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 타격을 받았다. 이후 손상된 원자로로 빗물이나 지하수가 흘러 들어오면서 오염수가 발생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사고 이후 10년 동안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125만t의 오염수를 저장했지만 용량이 한계에 다다랐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13일 각료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공식 결정했다. 해외는 물론 일본 자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해 8월 24일 방류를 시작했다.

■안정기 판단 일러… 대응 고삐 죄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국내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은 미미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 해역에 오염수가 유입되려면 최소 2~3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후 상황에 대비한 점검, 대응 체계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QR코드를 활용한 수산물 이력제 확대 등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소비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국립부경대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김도훈 교수는 “지난 1년간 적절히 대응했기 때문에 시민의 불안 심리가 해소됐다”면서도 “오염수는 한 번 문제가 터지면 파급력이 큰 데다 아직 안정기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역 시민단체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년을 맞아 22일 부산시의회에서 오염수 방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부산 고리2호기 수명 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정부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에 동조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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