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뒤집힌 에어매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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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대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중학생이 투신했다. 51층, 그러니까 110m를 훌쩍 넘는 높이. 다행히 학생은 살아남았다. 투신 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아파트로 출동해 미리 공기안전매트(에어매트)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학생은 늑골 2개가 골절되는 대신 목숨을 건졌다. 고층일수록 에어매트로 곧장 낙하할 확률은 크게 낮아진다. 100m 넘는 공중에서 매트 정중앙에 떨어졌으니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에어매트는 화재 등의 상황으로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눈으로 보기에는 푹신할 것 같지만 충돌의 충격이 상당하고 잘못 착지할 경우 부상 위험도 높다. 에어매트는 모든 탈출 수단이 봉쇄됐을 때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비상계단이나 완강기로 최대한 낮은 곳까지 먼저 피난을 시도하는 게 순리다.

시중에 판매되는 에어매트는 5층형·10층형·15층형·20층형, 이렇게 층형별로 구분된다. 일선 소방서도 이를 구입해 사용한다. 층이 높을수록 제품 규격은 커지는데 20층형 크기는 가로 10m·세로 7m·높이 3m 정도. 최대로 잡았을 때 그 높이까지 사용 가능하단 뜻일 뿐 모든 충격을 견뎌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방장비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현재 에어매트 중 15m 높이 즉, 5층형만 인증을 해준다. 더 높으면 피난 장비로서 제 기능이 발휘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에어매트는 매트 안에 전기 팬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설치한다. 한 번 설치하는 데 20~30초가 걸리고, 공기가 빠진 뒤 원형 복구에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매트에 뛰어내릴 때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번에 한 명씩 낙하해야 한다. 그것도 매트 가운데 떨어져야 부상 위험이 적다.

지난 22일 오후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불이나 투숙객 2명이 20여m 아래 에어매트로 잇달아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은 하필 매트 가장자리에 떨어졌고, 또 한 사람은 그 반동으로 뒤집힌 에어매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고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에어매트 운용·유지를 위한 표준 매뉴얼의 미비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살자고 뛰어내린 에어매트가 생명을 외면한 채 비극의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 온갖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목숨은 어이없는 방식으로 위협받고 있다. 기본적인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그날은 언제 오는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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