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2대 국회 첫 여야 합의 민생법안 처리, 협치 계속돼야
개원 석 달 만에 ‘구하라법’ 등 무더기 의결
협치로 이룬 성과… 다른 쟁점 법안도 기대
개원식도 하지 못한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지 석 달 만인 28일 처음 여야 합의로 민생법안 약 30건을 처리했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구하라법이 통과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개원식도 하지 못한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지 석 달 만인 28일 처음 여야 합의로 민생법안 약 30건을 처리했다. 임기 시작 이후 줄곧 정쟁에만 골몰해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국회가 모처럼 본연의 역할을 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한 일명 ‘구하라법’, 전세사기특별법, 진료지원 간호사(PA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규정한 간호법 등 시급한 현안과 직결된 안건들이다. 부산과 관련해선 가덕신공항 부지의 조기 보상을 위한 토지보상법이 포함됐다. 모두 급한 안건임에도 그동안 처리가 지지부진했던 법안들이다. 꽉 막힌 민생의 물꼬가 이제야 조금 트이는 느낌이다.
개원 석 달 만에 여야 간 고성 없이 통과된 법안들은 모두 국민의 실생활에서 절절하고 시급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 씨 부모의 무책임한 상속권 요구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 속에 발의된 구하라법은 무려 5년 만에 입법화에 성공했다.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세사기 역시 특별법을 통해 정부가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최장 20년간 살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범죄 피해자가 사망해도 구조금을 유족에게 지급할 수 있게 한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 취약계층의 가스 요금 감면을 강화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 등 하나같이 정상 국회였다면 벌써 통과되고도 남았을 법안들이다.
22대 국회 이후 처음 민생법안을 합의 처리하면서 여야 사이에도 모처럼 뿌듯해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그동안 줄곧 국민의 지탄만 받다가 이제야 겨우 국회다운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처음으로 다수의 법안을 합의 처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오늘 민생법안이 통과돼 다행”이라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이번 처리를 계기로 여야 협치의 물꼬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야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일궈낸 민생법안의 결실은 이처럼 정치권에도 달콤한 맛을 선사한다. 외곬으로 서로 싸움만 해서는 맛볼 수 없는 협치의 맛이다.
이날 여야 간의 민생법안 합의 처리는 정쟁 속에서도 협치의 끈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권 스스로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거대 야당의 단독 입법 강행과 이에 맞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그리고 법안 폐기 반복의 악순환은 국민의 삶은 물론 여야 정치권에도 혐오와 파괴의 정서만 부를 뿐이다. 여야는 어렵사리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이번에 처리되지 못한 다른 쟁점 법안 처리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어려운 경제 상황부터 꼬이기만 하는 의정 갈등까지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한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여야는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