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 붕괴 직전… 응급실 '뺑뺑이'에 코로나 치료제 품귀
응급센터 '파행' 환자 못 받는 곳 많아
동네병원 쉬는 추석 연휴 불안감 고조
의료계 파업 장기화로 응급실 등 의료현장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한 환자가 들것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진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화돼 환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또 코로나19 재유행에도 불구하고 치료제가 품귀여서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의대 증원의 ‘고수’와 ‘철회’만 고집하며 7개월째 대치하고 있다. 의사협회가 간호법 제정에 반발하면서 의정 갈등까지 재점화된 양상이다. 게다가 여당 대표의 ‘의대 증원 유예’ 제안에 대통령실이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당정 관계까지 틀어졌다. 사태 수습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집권 여당까지 티격태격해야 되겠는가. 의료 대란의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국민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지금 의료 현장은 붕괴 직전의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부산의 70대 뇌경색 환자가 24일 한밤중에 쓰러졌는데 해운대구 자택 인근 응급센터가 받아주지 않자 서구와 부산진구 응급실까지 무려 35㎞나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사병 증세로 쓰러진 40대가 응급센터 20여 곳에서 거절당한 뒤 울산까지 가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 유일 권역응급의료센터인 동아대병원 응급실은 39병상 중 11병상만 축소 운영 중이다. 중증 환자가 와도 수술을 못해 다른 병원으로 쫓겨나는 것도 예사다. 누구든 제때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도 공급이 지연돼 환자 불편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약국 ‘뺑뺑이’를 돌다가 끝내 포기하고 감기약을 구입했다는 안타까운 사례도 드물지 않다. 방역당국이 치료제 17만 7000명분을 공급한다고 했지만 〈부산일보〉가 약국 20곳을 확인한 결과 두 가지 약을 모두 갖춘 곳은 11곳뿐이었고, 그나마 재고가 바닥나고 있었다. 고위험군인 노년층과 기저 질환자조차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도는 처지를 생각하면 애처롭다. 의료 대란으로 인한 진료 축소에 이어 간호사 파업까지 겹쳐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경우 진료 차질을 우려하는 환자도 많다. 환자들이 왜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응급실 파행의 이유로 배후 진료 차질을 지목한다. 응급실 초기 진료 후 전문 진료, 수술로 이어져야 하는데 전공의가 빠지고 전문의 교수 혼자 남게 되면서 연결 체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추석 연휴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최대 2배 늘어난다. 동네병원이 휴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추석 연휴를 ‘비상 대응 주간’으로 지정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 체계 자체가 비상 상황이라 시민 불안감은 가셔지지 않는다. 아프거나 다치면 국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의료 시스템 붕괴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대오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