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의료 체계가 ‘응급’… 붕괴 직전 살얼음판 방불
해운대 뇌경색 환자 75㎞ 뺑뺑이
온열 질환자 응급실 못 찾아 숨져
39병상 중 11병상만 운영 병원도
전공의 이탈로 수술 건수 반토막
추석 응급 대란 현실화 우려 팽배
의정 갈등이 6개월로 길어지며 전국적으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 4주차를 맞은 지난 3월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에서 40대 남성이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에 이른 사건이 드러나며 부산 응급실 붕괴의 경고등이 켜졌다. 부산의료원 등 보건의료노조 파업이 예고된 데 이어 통상 응급실 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포화 상태가 된 응급실 대란 우려가 커진다.
28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노조 부산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52분 북구에서 야외 작업을 하던 40대 남성 A 씨가 열사병 증세로 쓰러져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 5분 만에 출동한 구급대는 약 1시간 동안 부산 지역 응급센터 20여 곳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의 한 병원으로 A 씨를 이송했다. 사고 2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A 씨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A 씨는 이달 1일 끝내 숨을 거뒀다.
A 씨 유족은 “병원에 갔을 때는 너무 늦어 이미 뇌압이 많이 찬 상태로 의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6일간 중환자실에서 뇌사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떴다”며 “일찍 병원에 갔으면 수술이라도 해 최악의 상황은 막았을텐데 손 한번 못 써보고 보낸 것이 마음이 아프다. 두 번 다시 이런 갑작스러운 사고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에 부산 응급실 부하가 한계치에 다다르며 아슬아슬한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8시께 해운대구 중동에서도 70대 여성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아 부산 지역 병원 10곳을 돌다 골든타임 직전인 3시간 30분 만에 부산진구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고비를 넘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구급대는 해운대구, 서구, 부산진구 등 총 35km를 돌며 응급실을 찾아 헤맸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전공의들이 대거 빠져나가며 응급실 붕괴 위기가 현실화하는 형국이다. 부산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인 동아대병원은 3개월째 응급실 39병상 중 11병상만 운영 중이다. 동아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10여 명이 이탈하면서 전문의 교수 7명이 돌아가며 1명씩 응급실을 지키는데 당장 환자를 볼 인력이 없어 병상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배후 진료 차질이 응급실 위기의 더 큰 문제라고 지목한다. 최근 정부가 경증환자 분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응급실에는 주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중증환자가 방문하게 됐지만, 현장에서는 응급실 수용 여력이 있다 해도 정작 수술할 인력이 없어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응급실 초기 진료를 넘어 전문 진료, 응급수술 등이 진행돼야 하는데 매 단계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해 응급의료의 전체적인 고리가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평소 하루 100건이던 수술 건수가 최근 50건으로 줄어드는 등 수술 건수와 병상 가동률 모두 반토막 수준이 됐다”며 “응급실 수용이 문제가 아니라 배후 진료가 관건이다. 전공의가 빠지고 전문의 교수 혼자 수술을 모두 해내야 하는 상황이라 응급실 단계에서부터 중증 환자들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공백을 둘러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통상 추석 연휴에는 일반 병원들이 문을 닫아 응급실 환자가 배로 늘어난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 건으로, 이는 평소보다 1.9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부산에서도 추석 연휴 소방 출동은 평소보다 늘어난다. 이날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6일간 하루 평균 출동 건수는 538건으로 평소 일평균 출동 건수 573건에 비해 6.5%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공의 공백이 없을 때에도 명절마다 응급실 대란을 겪었던 의료 현장은 벌써부터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발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29일 보건의료노조 파업마저 예고돼 의료 공백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화하자 2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추석연휴 대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대책'을 내놨다. 다음 달 11일부터 25일까지 약 2주를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주간'으로 지정했다. 이 기간 동안 △136개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15곳 내외 거점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250% 인상 △응급실 진료 후 신속한 입원 및 전원을 위한 인센티브 확대 등을 실시한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