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디지털이 '존재'가 되는 시도
■이승현 '디지털 테라리움'
하루에도 수천, 수억만 건의 디지털 메시지가 생성 및 소비되듯 추정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디지털화된 정보 즉 데이터가 전 지구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고 살아있는 역사로 기록되는 현실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디지털과의 유기적인 공존이 지속되고 진화하는 세상은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며 우리의 소통 의지와 인식을 확장시키고 있다.
작품 ‘디지털 테라리움’(2022)은 수많은 가상환경의 통신 속 오고 가는 데이터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탄생한 새로운 세계에 관한 작품으로, 현실의 물리적 상호작용이 디지털 세상의 비현실적 공간에 적용되며 보이는 두 현실 간의 경계를 허물어 신비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인공지능, 가상공간 등 무한한 네트워크와 폭발적으로 생산, 소비되는 데이터 증가 현상에서 시작된 작가의 상상은 새로운 디지털 생태 영역인 ‘노바넷’을 만들고, 현실과 디지털 공간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정보와 역사, 지식을 기반으로 가상의 자아를 가진 디지털 생명체도 탄생시킨다. 작가는 스스로 만든 이러한 디지털 생태 환경을 ‘테라리움(Terrarium)’으로 명명하고 현실 세상 사람들과의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 시도와 함께, 인간 사회 관계성의 새로운 확장과 진화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작가는 테라리움의 3가지 중요한 요소로 조명, 환기, 습도를 설정한다. 이는 현실 환경에서의 생존을 위한 기본 요소인 공기, 물, 태양의 디지털적 대치를 보여주며, 테라리움 속 생명체와의 ‘실제’하는 교감의 경험을 현실 세계로 끌어낸다.
사전에서는 ‘사물’을 ‘살아있는 것과 구별되는 생기 없는 물체’라고 정의하지만, 진화하는 과학 기술과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류 인식의 변화는 스스로 물리적 관념을 허물어 버리는 ‘살아있는 사물’을 실제로 개발하고 있다. 박테리아 벽돌, 세포 로봇, 인공지능 강아지 등 상상이 아닌 ‘실존’이며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물 생명과 인간·비인간 사이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디지털 테라리움’은 부산현대미술관이 올해 11월에 개막하는 연례전 ‘2024 부산모카 플랫폼_ 미안해요 데이브 유감이지만 난 그럴 수 없어요’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불확실한’ 창조 혹은 ‘완벽한’ 오류, 인공지능 예술의 감정적 교감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직관과 환기를 통해 기술 융합 현대미술 범주화 흐름에 대한 동시대적 담론과 조망을 다루며, 기계적 예측성과 인간적 감수성 그사이의 관람자적 시선과 경험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작가 이승현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내면에 끼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인간과 디지털 존재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사건과 관계를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하상민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