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야구도 ‘천만 관객’
한국 프로야구가 지난달 28일 사상 첫 9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지난달 13일 800만 관중을 넘긴 지 단 보름 만이다. 이로써 전인미답의 ‘천만 관중’을 목전에 뒀다. 종전 최다 기록은 840만 명(2017년). 올해 100만 관중을 넘긴 구단도 신기록을 세울 기세다. 두산(8월 8일), 삼성(8월 14일), LG(8월 16일), 기아(8월 28일)에 이어 롯데와 SSG도 곧 100만 명 돌파에 합세한다. 폭염과 올림픽 같은 방해물도 아랑곳없는 역대급 흥행 가도. 여름철은 관중이 줄어드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정반대 양상이다.
시즌 시작 전에는 비관적 전망이 주류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우선 삼성 라이온즈가 약진했다. 수도권 구단을 제치고 홈 관중 동원 1위, 시즌 성적도 전문가 예상을 깨고 2위다. 여기에 전국구 관중 동원 능력이 뛰어난 기아의 1위 질주, 팬들의 충성심이 강한 롯데와 한화의 선전이 어우러졌다. 올해는 1위부터 10위까지 압도적 강자가 없다. 하위권인 롯데와 NC도 ‘가을 야구’의 꿈을 못 놓는 상황. 엎치락뒤치락 치열하면서도 재미난 순위 싸움이 관중들을 경기장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20대 여성 팬들의 대거 유입이다. 예매 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경기 티켓의 20대 구매 비율이 40% 선으로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성비로 보면 여성이 54.4%로 남성보다 많았고, 이 여성들 중 23.4%가 20대인 점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사상 첫 천만 관중 돌파의 동력이 20대 여성이라는 게 수치로 확인되는 셈. 20대 여성 관중은 지금 한국 프로야구 팬덤 문화의 새로운 주역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 이름과 백넘버를 관중석 앞에 내걸고 응원하는 여성 팬들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팬심에 힘입어 유니폼과 기념품 등 관련 상품과 식음료의 매출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의 키워드는 ‘젊은 층’ ‘여성’ ‘미혼’ 세 가지로 정리된다. 야구의 나라인 미국·일본과 비교해도 확실히 다른 풍경이다. 이들 나라는 관중 연령대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 야구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과거와 다른 응원 문화와 관람 행태를 낳는 중이다.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야구장의 응원 분위기를 느끼고 그 순간을 즐기는 담담함. 지역 갈등도 구단 싸움도 일어날 리가 없다. 이런 건강한 문화가 천만 관중 돌파는 물론 한국 야구 부흥의 새 기운이 된다면 더 좋은 일도 없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