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빈집 정비 반토막… 이행강제금도 ‘0원’ [부산 '빈집 SOS']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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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찔끔 정비로 노후화 가속

철거 지원 예산 부족 소유주 꺼려
사업성 없어 공공·민간도 소극적
건물·토지 소유주 동의 산 넘어 산

민원 우려 행정 조치 제대로 못해
주택 재산세 특례는 실효성 의문
“예산 증액·제도적 빈틈 보완해야”

부산의 빈집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비 예산과 건수는 3년 전보다 줄었다. 18일 부산 동구 주택가에 방치된 빈집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의 빈집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비 예산과 건수는 3년 전보다 줄었다. 18일 부산 동구 주택가에 방치된 빈집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의 빈집은 소리 소문 없이 늘어 간다. 하지만 빈집 정비는 그 속도를 좀체 쫓지 못한다. 무허가 빈집이 즐비한 부산만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법과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이다. 빈집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 지자체들은 재산권 침해와 소유주 반발에 부딪히거나 무허가 주택 등 소유주 파악에 어려움을 겪으며 적극적인 빈집 정비에 나서지 못한다. 비현실적인 철거 지원비와 세제 등 정책적 빈틈은 자발적인 빈집 정비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빈집은 폭증, 정비는 뒷걸음

부산시와 일선 구·군에 따르면 빈집 정비 사업은 빈집 철거 사업과 햇살둥지 사업으로 나뉜다. 빈집 철거 사업은 소유주의 동의를 거친 빈집을 동(건물)당 1400만 원(초과는 자부담)까지 지원해 철거하고, 빈집이 있던 땅을 3년간 소공원이나 텃밭, 주민 쉼터, 마을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햇살둥지 사업은 동당 공사비의 3분의 2(한도 1800만 원)까지 지원해 리모델링한 후 3년간 주변 시세의 반값에 주거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임대하는 사업이다. 무허가 빈집은 지원받지 못한다. 빈집 일대는 임대가 쉽지 않아 최근엔 햇살둥지 사업보다 철거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이 배분되고 있다.

최근 3년간 부산시의 ‘빈집 정비 사업 추진 실적’을 보면, 총 예산은 2021년 30억, 2022년 25억, 지난해 20억 3000만 원으로 감소했다. 실적 역시 빈집 철거는 2021년 224개 동에서 지난해 132개 동으로, 햇살둥지는 44개 동에서 28개 동으로 줄었다. 빈집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지만 빈집 정비는 뒷걸음친다.

중구 관계자는 “올해 시에 빈집 철거로 8개 동을 신청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4개 동만 하기로 했다”며 “예산 부족으로 철거 실적이 없는 지자체들도 있다”고 말했다.

빈집 밀집 지역은 산복도로 등 경사지이거나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부산도시공사 등 공공 기관들은 사업성 부족으로 빈집 매입이나 리모델링 후 임대에 소극적이다. 시행사나 건설사들도 사업성이 떨어져 재개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허가 빈집이 많고, 빈집이 띄엄띄엄 있어 일괄 매입 후 개발이 힘든 점도 민간 차원의 빈집 정비가 정체된 이유다.

■적극 행정은 ‘언감생심’

빈집 문제가 심각한 지자체들은 적극적인 빈집 행정에 나서고 싶지만, 현장 여건은 녹록잖다. 〈부산일보〉가 부산 16개 구·군에 빈집 직권 철거와 이행강제금 부과 내역, 빈집 철거 명령 또는 안전 조치 명령 건수를 요청해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직권 철거와 이행강제금 부과는 한 건도 없었다. 철거 명령 또는 안전 조치 명령의 경우, 중구가 지난 3년간 각각 총 9건, 57건, 동래구가 안전 조치 명령만 총 26건을 내렸다. 동구, 영도구, 연제구, 해운대구는 행정 지도(권고 등)나 유지·관리 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나머지 지자체는 철거 명령이나 안전 조치 명령 이력이 없었다.

빈집 직권 철거는 안전 등의 문제로 지자체장 권한으로 빈집을 긴급 철거하는 것을 말하고, 이행강제금은 철거 명령이나 안전 조치 명령을 했음에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분한다. 지자체들은 위험천만한 빈집 방치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행정적 권한이 있지만,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셈이다. 영도구 관계자는 “안전상 매우 위험해 행정 조치를 하고 싶어도 민원이 우려돼 적극적인 조치가 힘들다”며 “무허가 빈집도 소유주의 재산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임의 철거가 어렵다”고 말했다.

빈집 철거를 위해서는 건물과 토지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소유주가 여럿인 경우도 많아 흩어져 있는 소유주를 확인해 동의를 구하는 행정 절차에 2~3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소유주가 확인돼 연락을 취해도 연락이 안 되거나, ‘가만히 두면 언젠가는 재개발된다’며 철거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책적 빈틈, 자발적 정비 막아

인건비 상승 등으로 철거 비용이 크게 증가해 통상 단층 빈집은 2000만~3000만 원, 2층짜리는 5000만 원 정도다. 빈집이 도로와 떨어져 있거나 경사지에 있어 장비가 접근하기 힘든 경우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빈집 철거 시 1개 동당 14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지만, 영세 소유주들은 철거비 상승으로 자부담금이 커져 철거를 포기한다.

빈집을 철거하면 재산세가 되레 느는 세제 역시 소유주의 자발적인 철거를 막는 요인이다. 빈집을 그대로 둘 때 부과되는 주택분 재산세는 철거 뒤엔 토지(나대지)에 대해 부과돼 세금 부담이 커진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빈집 철거 후에도 철거 전 납부하던 주택 세액으로 재산세를 5년간 인정해주는 특례를 올해부터 적용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빈집 소유주 김 모(56) 씨는 “잘 팔리지 않고 재개발도 힘든 빈집들은 특례 기간 이후 다시 큰 세금 부담이 돌아온다”며 “철거 뒤 세금이 이전 수준 정도로 계속 유지되거나 줄어야 자발적인 철거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성대 이석환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무허가 빈집 등에 대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빈집 정비와 소유주들의 자발적인 정비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미비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빈집 철거비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1400만 원이던 지원금을 2000만 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예산 부서와 협의 중이며, 전체 빈집 정비 예산도 내년엔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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