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참회록 “경제학은 필요한가”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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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 앵거스 디턴

최저임금 논란·의료 시스템 폐해 등
다양한 이슈를 경제학 측면에서 고찰
경제학자의 과오·책임을 통렬히 지적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표지.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표지.

1996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두 단계나 인상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아는 그 논쟁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비가 늘 것이라는 주장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 소비 역시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이에 2년 전 발표된 미국 프린스턴대의 논문이 소환된다. 1992년 최저임금을 인상한 뉴저지주와 그렇지 않은 인근 펜실베이니아주의 패스트푸드점 고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였다. 최저임금의 소폭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논쟁은 정리가 되었을까. 아니다. 논문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뿐이었고, 최저임금 논쟁은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며 지금까지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붕괴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렀다. 사태를 초래한 월가의 부자들은 수억 달러를 챙기고도 처벌받지 않았고, 많은 애먼 사람들이 직장과 집을 잃었다. 제 역할을 못하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책임은 자연히 정치인과 경제학자에게 쏠렸다. 두 부류는 늘 서로를 탓하기 마련이지만, 이때만큼은 경제학자의 할 말이 없었다. 보통은 학자가 위기를 예측(경고)하고, 정치인이 전문가 의견을 모으고 이해 충돌을 조정해 대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리먼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위기 직전 많은 경제학자는 시장 붕괴 원인이 된 금융공학상품을 홍보하기까지 했다.

위 두 장면에서 우리는 경제학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수십 년간 공방이 이어진 물음 하나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경제적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는 데도 그 전조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런 경제학이 어떤 가치를 지니며, 그것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경제학자는 또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러한 의심을 제대로 부채질한다. 책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기존의 여러 경제서와는 달리 경제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다. 경제서라기보다 저자(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다)의 회고록에 가깝다.

저자는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와 맞닿은 논쟁들, 의료 시스템의 폐해, 소득과 자산 불평등, 은퇴와 연금 문제 등을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본다. 책은 미국 내 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주제는 미국에 한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꽤나 유의미하다. 1990년대 미국에서 불거진 최저임금 논쟁의 경우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전혀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우리의 시스템 역시 현재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리고 책의 말미(10장 ‘경제학자가 경제를 망쳤나’와 11장 ‘경제 실패는 경제학의 실패인가’)에 이르러 저자는 앞서 다룬 논의들을 정리하며 경제학과 경제학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꿈을 실현하는 땅(‘아메리칸 드림’은 한때 전세계에 퍼진 환상이었다)에서 불평등의 땅으로 전락해버린 미국의 현실과 그 과정에서 경제학과 경제학자가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지적하고 그 책임을 묻는다. 이는 저자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에서 추천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앵거스 디턴 지음/안현실·정성철 옮김/한국경제신문/336쪽/2만 3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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