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생활 변화 반영 못한 전기료 누진제 손볼 때 됐다
폭염에 최고구간 요금 가구 21% 폭증
국민들 충격, 합리적 조정 필요성 제기
올해 여름 역대급 폭염에 따라 예상됐던 전기료 폭탄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전기료 누진제 중 최고구간인 3구간에 해당하는 전력 사용 가구가 전년 같은 달보다 무려 21%나 폭증했다. 가구 수로 따지면 국내 2521만 가구 중 약 41%인 1022만 가구가 최고구간인 3단계 요금을 적용받은 것이다. 30일 한국전력이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주택용 평균 전력 사용량도 363kWh로 역대 최고였다는 작년 8월보다 무려 30kWh가 더 늘었다. 사상 최고의 폭염이 남긴 현상으로 국민들의 요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누진제 체계의 개편 요구도 쏟아진다.
현재 7~8월에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료는 월 전력 사용량 450kWh를 넘으면 최고구간인 3구간 요금이 적용된다. 7~8월 외에 적용되는 3구간보다 50kWh가 더 많다. 폭염 절정기인 한여름 냉방 수요를 감안해 2018년부터 일시적으로 누진 구간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누진제인 만큼 3구간은 kWh당 기본요금이 307.3원으로 1구간의 약 3배에 달한다. 전기 절약을 유도한다는 취지지만 올해와 같은 살인적인 폭염에는 3구간 시작인 사용량 450kWh를 과소비로 보기도 어렵다. 기후와 생활 변화를 감안하면 이미 7~8월 평균 사용량이 500kWh에 육박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현행 요금 체계와 현실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전력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기후 변화로 폭염 일수는 갈수록 늘고 있고, 이에 따라 가정용 냉방기기 사용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름철 폭염이 상시적이듯 전력 수요 급증도 일상화됐다. 이를 고려하면 현행 누진제 체계 개편은 검토해 볼 때가 됐다. 정치권에도 이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걸림돌은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 규모다. 현재 누적 적자가 200조 원이 넘는 지경에서 누진제 완화는 한전을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와 한전이 계속 전기료 인상을 거론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누진제 조정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누진제 요금 체계의 개편은 결국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진 국민 생활의 변화와 한전의 막대한 누적 적자 해소라는 두 측면을 만족하면서 풀어야 하는 문제다. 국민 부담 완화나 한전의 적자 해소 모두 절박한 과제인 만큼 양 측면의 조정과 타협이 필요하다. 일단은 2016년 이후 변화가 없는 현행 누진 구간의 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와 한전은 원가보다 낮은 요금의 점진적 조정을 포함해 최고구간인 3구간을 상향하는 동반 전략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누진제 적용이 제외되는 산업용도 이참에 한전 적자 완화를 위해 합리적인 조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모두 어려운 문제지만 이젠 피할 수 없는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