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빈집 SOS'] 주민 떠난 곳 영락없이 방치… 남은 자들에겐 허무함만
4 - 빈집 고위험 동네를 가다
대다수 저소득 고령층 입원·사망 다반사
덩그러니 남은 집 정비·철거 기대 못 해
쓰레기통 전락 악취 진동·붕괴 위험 상존
식당·마트·이발소 등 생활 인프라 축소
모이거나 정 나눌 공간 없어 고립 부추겨
빈집은 지역 소멸을 알리는 경고이자 삶의 질을 낮추는 주범이다. 빈집 대책이 제자리걸음을 반복(부산일보 9월 2일 자 1면 보도 등)하는 가운데 ‘빈집 지대’ 주민들은 생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동네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은 빈집 지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 서구 남부민1동 주민 9명을 인터뷰했다. 남부민1동은 〈부산일보〉와 부산연구원이 산출한 ‘빈집 SOS 지수’ 조사에서 고령화 비율, 건축 연도, 경사도 등이 높게 나와 빈집 발생 위험도가 높은 곳으로 분류됐다.
■빈집은 왜 생기나
빈집 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대개 고령층이고 궁핍하다. 가장 젊은 주민이 60대이고, 주민 80% 정도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동네에 빈집이 새로 생기면 대개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일 때가 많단다. 더 좋은 동네,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는 이야기는 드물다. 빈집 지대 주민이 몸을 옮기는 장소는 대개 요양 병원 아니면 장례식장이다.
“집이 비면 두 가지야. 요양 병원에 갔거나 죽었거나.” “저기 파란색 지붕 집도 아무도 안 살아. 저 집 살던 조 씨 할머니가 두 달 전에 돌아가셨어.”(54년 거주 주민)
주민이 여러 이유로 떠나면 집만 남아 방치된다. 가족이 있는 주민도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연락이 돼도 그들이 집을 정비하거나 철거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나이 든 주민이 하나둘 동네를 떠나면 빈집도 그만큼 늘어난다. 최근 10년 새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식당, 이발소도 덩달아 사라져
“여기 동네 경치는 좋아. 외국 관광객도 여기 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니까.”(이 모 씨·78)
이 씨 말은 경치 말고는 동네 자랑할 건덕지가 없다는 의미였다. 빈집 지대 주민들이 가장 먼저 겪는 불편은 기초적인 생활 인프라 축소다. 식당 이발소 세탁소 목욕탕도 덩달아 줄어든다는 말이다.
“집 유리창이 깨졌는데, 유리 갈아주는 가게가 없어서 그냥 두고 있어.” “이발소가 없어져서 옆 동네까지 가. 아내한테 바리캉이라도 사줘서 밀어 달라고 해야 할까.”(김 모 씨·81)
남부민1동에도 15년 전에는 구멍가게를 포함해 동네 마트가 15개가량 있었다. 지금은 단 한 개만 남아있다. 주민들은 장을 보러 걸어서 20분 걸리는 자갈치시장까지 간다. 특히 올해는 폭염 속에 장을 다녀야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형편이 안 되는데, 참고 살아야지요.”(65년 거주 입주민)
■빈집 옆에서 산다는 것
빈집은 동네 쓰레기통 신세가 된다. 종량제봉투 살 돈이 아까워 빈집 담을 넘어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내놓으면 수거해 가는데, 꼭 쓰레기를 빈집에 버리더라고. 쓰레기 투기 금지 안내문도 별 소용 없어. 악취는 물론이고 벌레가 진짜 문제야.”(정 모 씨·58)
빈집에 쌓인 쓰레기는 벌레들을 불러 모은다. 쓰레기 악취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지만 빈집은 엄연히 사유지여서 청소도 못 한다. 빈집 지대마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하수구에 덮개가 덮여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지네, 바퀴벌레, 모기가 드나드는 통로인 하수구에 덮개라도 덮을 수밖에 없다.
붕괴는 더욱 직접적인 위협이다. 지붕이나 담벼락에 금이 간 집이 부지기수다. 오랫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50년이 훌쩍 지난 집들도 대다수이고 집이 부실하게 지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태풍이나 폭우가 온다면 빈집이 무너져 자신의 집을 덮칠까 봐 노심초사하기 일쑤다. 실제 지난해 7월 영도구에서는 빈집이 무너져 인근 주민이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기엔 1973년에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이야. 철근을 땅 깊숙이 안 박고 그대로 집을 지은 경우가 많아. 땅 위에 이층집을 그대로 쌓아 올린 셈인데, 태풍이나 폭우가 오면 불안하지.”(이 모 씨·65)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빈집 옆에 산다는 것은 불안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주민들이 빈집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사라지는 이웃, 남는 건 허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은 빈집 지대 주민들이 겪는 공통의 어려움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다. 동네 곳곳에 빈집이 늘면서 주민들이 고립되는 셈이다. “저녁이면 되면 갈 곳이 없어. 집에 고립되는 거지.” “이웃? 바로 옆집이 텅텅 비었는데, 이웃이 어딨노?”(김 모 씨·81)
남은 주민들은 다들 “허무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이웃마저 요양 병원으로 떠나거나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과 이어진 실이 끊어지는 듯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 “이웃이든, 친구든 한 번 동네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렇게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이 들 때면 허무함이나 쓸쓸함을 느끼지.”(이 모 씨·78)
이웃들이 모이거나 정을 나눌 공간이 없다는 점도 사회적 고립을 부추긴다. 실제 남부민1동 주민들은 경로당 등이 없어 선풍기 하나 없는 야외 전망대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여름에는 살인적인 무더위와 겨울에는 살을 베는 추위를 견뎌야 한다. “정부나 부산시에서 빈집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어. 다만 여기 주민들은 이대로 빈집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김 모 씨·73)
글·사진=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