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신과(벌레와) 함께
■박웅규 ‘더미(Dummy) No.63 ~ No.80’
박웅규 '더미(Dummy) No.63 ~ No.80'.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종종 미술은 추함을 성스럽게 탈바꿈하는 마술을 일으킨다. 작가 박웅규의 작업이 그 예가 된다. 박웅규가 주로 그리는 소재는 벌레이다. 그는 하찮고 기피되는 벌레를 세필 붓을 사용해 집요하게 그려간다. 나방의 수많은 털과 다리, 잔무늬를 꼼꼼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면 작가가 어떤 강박과 편집증을 가지고 있진 않은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종교적 수행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는데 마치 수도승이 인고를 견뎌 깨우침을 얻듯 무수한 반복을 거듭해 뭔가 구하기 때문이다. 박웅규 작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길래 보기에도 끔찍한 지렁이, 지네, 나방과 같은 혐오 생물을 현미경으로 바라본 듯 세세히 그릴까?
작가 박웅규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에 덧씌워진 사회적 관념을 해체하고 순수하게 남은 본질적 대상을 다시 종교의 도상학적 기호에 맞춰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 벌레는 성과 속이 양립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어 쾌와 불쾌가 뒤섞인 이상한 매력으로 관람자를 유혹한다.
작가는 어떤 대상이든 오랜 시간 면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존재 그 자체를 맨눈으로 응시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문화가 만든 부정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대상의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지점이다. 작가는 대표적인 혐오 생물인 벌레를 통해 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벌레를 좋아하는 남다른 취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벌레에 부여된 혐오감이 휘발되는 순간을 세밀화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 경험하기 위해, 나아가 사회의 고정된 가치 체계를 조소하고 종교적 도상을 이용해 벌레를 신으로 치환시키기 위해 혐오 생물을 선택한 것이다.
작가가 주로 차용하는 도상적 기호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불교의 만다라, 원시종교의 상징적 도형 등이 있다. 이러한 가공 과정을 거친 벌레는 혐오와 신성함이 결합한 양가성을 띠며 기이한 매혹, 불쾌한 쾌 등 대립하는 정동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작품에 ‘더미(Dummy)’라는 작품명을 일괄적으로 붙이는데 영문 ‘Dummy’는 ‘껍데기’를 의미한다. 이 같은 제목은 사회 문명이 만든 허울을 가리키며 사회의 정해진 관념체계로부터 탈주하여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리라 라는 결단의 의지로 보인다.
박웅규의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 2023년 기획전 ‘노래하는 땅’에 소개돼 관객을 만났고, 현재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박한나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