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자동화 세상 적응하기
이재정 부산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최근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이제는 지번을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도로명을 넣으면 자동적으로 아파트 이름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론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아파트 이름이 점점 더 외래어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아파트 이름이 더 길어지고 있다. 한 번씩 잘못 눌러 이전에 살던 집으로 택배를 보내 찾아오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A/S 때문에 업체에 전화를 걸 때도 그렇다. 때론 주소를 부를 때 지번, 아파트명까지 부르면 한참을 불러야 한다. 왜 이렇게 아파트 이름은 길어야 할까. 이제는 주위를 둘러봐도 한글로 남아 있는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안 된 아파트뿐이다. 외래어가 섞여야지 새롭고 뭔가 세련된 것으로 보이는 걸까.
나도 이런데, 하물며 어르신들은 어떨까? ARS 전화의 경우 정말 여러 단계를 거쳐야 듣고 싶은 사람의 음성을 듣게 된다. 대기자가 많으니 기다리라거나 AI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라고 한다. 그게 싫으면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기다려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익숙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위해 따로 번호를 하나 더 만들어 좀 더 쉽게 상담사와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면 어떨까?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안 되는 걸까.
9일 한글날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거의 대부분이 외래어로 채워져 있다. 아파트, 상점 이름, 상점에서 파는 물건까지. 이제는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섬유유연제로 설거지를 하고 계신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분명히 주방세제를 사러 가셨겠지만 세제 이름이 다 비슷비슷하고 깨알 같이 적어 놓은 사용법은 잘 보이지도 않으니, 결국 사 오신 게 섬유유연제였던 모양이다.
고령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자신을 맞춰 가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기술이 발전하고 비대면 시대로 향하고 있다. 비대면이 점점 진행되면 〈대면 비대면 외면〉이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외면’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 시대는 어쩌면 우리가 대비할 새도 없이 갑자기 현실로 훅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나오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람이 해왔던 일들을 이제는 기계나 가상의 인물이 대체하고 있다.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노인이 살기 편한 환경이 모든 사람에게도 살기 편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 본다.